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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3] 소록도의 두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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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3] 소록도의 두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7.03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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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 우리정부와 마리안느,  마가렛의 고국인 오스트리아 정부, 그리고 WHO와 ICN까지 확산돼 이들의 헌신과 봉사의 삶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 되고 기억되길 기원한다.

2020 노벨평화상을 향한 국민들의 호응과 움직임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두 간호사를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서명운동이 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남 고흥군이 추진, '노벨평화상 범국민추천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대한간호협회가 함께 전개하고 있는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85)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84)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 지난 6월 말 현재 91만5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마르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 주민들에게 큰 할매와 작은 할매로 불리며 소록도에 사랑의 기적을 보여준 파란 눈의 천사들이다. 이들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낯선 땅 소록도에 들어와 40년 넘게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살면서 ‘저주받은 땅 소록도’를 ‘사랑과 희망의 땅’으로 변화시킨 사람들이다. 현재는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

마리안느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룩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에 한센병 환자를 간호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62년에 소록도를 찾았다. 4년 뒤에는 마리안느의 대학 룸메이트인 마가렛이 소록도를 찾았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문둥이라고 불리며 가족들조차 접촉하기를 꺼려할 만큼 한센병은 저주받은 천형이나 다름없었다. 의사들마저 접촉을 피하느라고 꼬챙이로 환부를 들쑤시던 시절에 20대의 앳된 이국의 간호사들은 장갑도 끼지 않는 맨손으로 환자들의 썩어가는 살을 만지고 함께 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매일 새벽이면 병실마다 방문해 따뜻한 우유를 나눠주고, 생일을 맞은 환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에 초대해 직접 구운 빵을 대접했다. 인권이 폐지 한 장의 값어치조차 되지 못한 시절의 환자들을 ‘인간’으로 대해준 최초의 사람이 이들이었다.

이들은 열악한 소록도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자 고국에 도움을 요청, 각종 의약품과 우유, 물리치료기와 후원금까지 지원받아 환자들을 위해 사용했다. 한센병 환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원과 보육원을 운영하고 완치된 환자들을 위해 재봉기술과 건설기술, 농사일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 10만원과 고국 수녀회에서 보내온 생활비까지 환자들에게 내주고 정작 자신들은 작은 장롱과 십자가만 있는 좁은 방에서 살았다. 1996년 받은 국민훈장모란장의 상금마저 병이 나아서 소록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데 썼다.

그러다 나이가 일흔 고개에 접어들자 늙고 병든 몸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해  2005년 아무도 모르게 소록도를 떠나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이들의 손에는 40여 년 전 처음 소록도에 올 때 가지고 왔던 낡고 해진 가방 하나가 들렸다.

이들이 떠난 빈 방에서는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편지에는 ‘고령의 나이로 인해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한센병 환자와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줄까봐 말없이 떠난다’는 내용이 A4용지 두 장에 꼼꼼히 적혀 있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며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썼다. 소록도 주민들은 두 천사와의 이별을 애통해하며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이 넘도록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40여 년이 넘어 찾은 고국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안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 놓고 날마다 ‘소록도의 ’을 꾸고 살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동, 세계의 모든 눈이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으로 모아지던 지난달 30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는 국제간호협의회(ICN)가 개최한 ‘2019 ICN 대표자회의 및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세계보건기구(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과 ICN 아네트 케네디 회장을 비롯한 세계 120여 개국 간호협회 대표와 간호사들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노벨평화상 추천 행렬에 동참했다.

WHO는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0년을 ‘세계 간호사의 해’로 지정했다. 두 천사의 맑은 영원을 간직한 어린사슴의 모습을 닮은 소록도, 전남 고흥군이 추진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 우리정부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고국인 오스트리아 정부, 그리고 WHO와 ICN까지 확산돼 이들의 헌신과 봉사의 삶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 되고 기억되길 기원한다. ‘저주받은 땅’을 ‘사랑이 넘치는 땅’으로 바꾼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은 변화된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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