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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20] 무너진 사다리와 동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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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20] 무너진 사다리와 동아줄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10.23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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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민주당이 정쟁을 핑계로 전수조사 대상 확대를 반대하고, 한국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 핑계를 대며 전수조사 법안을 슬그머니 칼집에 넣어버리는 것이야 말로 정쟁이고 국민우롱이다.- 
 
광주에 전남대병원이 있다. 호남의 대표적 종합병원으로 의료시설과 의료진의 수준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주민들의 신뢰가 크다. 지역민들이 웬만한 질병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도 전남대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연봉 등 근로조건도 수도권에 어깨를 견줄 만큼 선호도가 높다.

이러한 전남대병원에서 병원 간부자녀들의 얽히고설킨 취업비리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전남대병원의 취업비리는 우리 사회의 ‘은밀한 거래’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병원 간부직원들이 서로 짜고 자녀들을 ‘품앗이 채용’ 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밝혔다.

박 의원이 밝힌 비리 내용은 이렇다. ‘지난 2018년 전남대병원 김 모 사무국장의 아들이 전남대병원에 입사 지원했을 때 지 모 총무과장이 면접관으로 참여해 합격시키고, 올해에는 지 모 총무과장의 아들이 전남대병원에 입사 지원하자 이번에는 김 모 사무국장이 면접관으로 들어가 합격하게 도와줬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아들에게 ‘98점’의 면접 점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들이 품앗이 한 면접 점수 ‘98점’은 당시 면접 최고 점수였고 그들의 아들들은 1등으로 채용됐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15일 전남대병원 국정감사에서 박 의원은 김 모 사무국장이 자신의 아들과 사귀는 여자 친구도 합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른바 ‘남친 아빠 찬스’ 의혹을 제기 하기도 했다.

전남대병원의 취업비리가 박 의원이 밝힌 사례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전수조사를 한다면 이들의 ‘짬짜미 취업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편법과 불법이 어디 전남대병원뿐이겠는가. 오히려 지방의 대학병원 간부들이 이 정도니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얼마나 더하겠는가하는 생각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 확신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몇 년 전 윤 모 전 광주시장은 사기전화 한 통화에 속아 취업비리를 몸소 실천, 만천하에 우세를 샀으니 더 무얼 말하겠는가.

나라를 두 동강이 내고 정권의 지지율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든 조국사태도 다름 아닌 이러한 불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였다.

국민들이 ‘조국’에 분노했던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중에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는 자녀의 입시와 관련된 위법이나 편법이었다.
 
“저들의 자녀는 노력이나 실력이 아닌 부모를 잘 둔 탓에 명문 대학에 가고, 그 졸업장으로 기득권을 보장 받는다”라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였다.

국민들의 분노는 끝내 오를 수 없는 ‘무너진 사다리’와 세세토록 손에 쥐는 ‘동아줄’로 나뉘는 신 신분제도에 대한 절망의 표출이다.

마침 조국사태로 발화된 ‘불평등 불공정’에 대한 비난여론에 따라 여야는 경쟁이나 하듯이 자녀 입시비리 전수조사 법안 발의를 서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학입시비리 전수조사를 대상으로 국회의원을 한정하고 있고,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녀 대학입학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은 물론 차관급 및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바른미래당은 입법부인 국회를 포함해 행정부, 사업부까지 조사 범위에 포함시키는 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에서는 국회의원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할 경우 정쟁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서 조사범위의 확대에 반대하고 있지만 일단은 어떤 식으로든지 법안 마련이 우선이다.

민주당이 정쟁을 핑계로 전수조사 대상 확대를 반대하고, 한국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 핑계를 대며 전수조사 법안을 슬그머니 칼집에 넣어버리는 것이야 말로 정쟁이고 국민우롱이다.

만연한 취업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참에 가을 석류 터지듯 있는 대로 다 까발려져야 만이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빛바랜 표어가 아니라 아직 유효한 약속이다. 2년여 전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열광했고 기대했다. 세월이 흘러 열광은 식었을지라도 기대는 주권자의 요구로 변해 여전히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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