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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소중한 2020년’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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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소중한 2020년’을 사시기 바랍니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1.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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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매일 똑같은 해가 뜨고 지는데 유독 시간을 구분한 건 삶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편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희망을 이어가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월력(月曆)은 무상한 권력의 변천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대 중국에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세수(歲首)로 삼는 정월이 달랐다.

새 왕조는 정월 첫날인 설을 바꿔 전 왕조의 흔적을 지웠다. 하(夏)나라는 지금의 음력 정월인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삼았지만,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는 섣달과 동짓달인 축월(丑月)과 자월(子月)을 각각 한 해 시작으로 정했다.

로마 시대는 3월인 마치(March)가 정월이었다.경자년 새해가 밝았다.올 새해도 범종(梵鐘)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서울 보신각의 타종식을 시작으로 나라 곳곳에서 범종 소리가 축복처럼 울려 퍼졌다. 범종은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과 더불어 불교의 사물(四物)이다. 깊은 산 속 사찰에서만 듣던 범종의 소리를 도심 한복판에서 들을 수 있으니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과거는 미래를 준비하는 마중물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각오는 늘 새롭다. 조지훈 시인은 ‘원단(元旦) 유감-캘린더의 첫 장을 바라보며’에서 쉼없는 자기수양을 새해 다짐으로 삼았다. ‘오직 삶과 죽음만을 생각하면서 올해도 삼백예순 날이 흘러가리라/천도의 순환은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 하나(중략) 가는 자는 세월뿐/천행의 건(健)함이여/군자는 마땅히 그 자강불식(自强不息)을 본받을진저!’ 새해 다잡아야 할 마음가짐이다.

한때 새로웠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는 게 섭리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이 한 점 부끄럼 없기는 어렵다. 삶은 아쉬움으로 점철된 후회의 연속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결고리를 끊는 인위적 계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1달, 1년은 자기 위안을 위한 망각의 시간 묶음이다. 새롭게 거듭나도록 지난날과 단절 명분을 제공한다. 잊고 싶은 기억은 지난해라는 망각의 강에 흘려 보낸다.

지구촌 곳곳에서도 신년 축하행사가 열렸다.거대한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1월1일 0시를 기해 새해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그러나 우리처럼 타종으로 새해의 서막을 알리는 나라는 드물다.

범종의 장중하고 묵직한 울림은 환호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오히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경건함이 밀려온다. 선물 받은 비싼 옷에서 느끼는 기쁨이라기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완성한 새 옷을 앞에 둔 경이로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새해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새날이 아니라 365일의 지난날들이 쌓이고 쌓여 만든 결과물이다.

이맘때는 새해 운수가 어떨지 알려주는 게 많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아니더라도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한 때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간다. 입시, 진로, 취업, 결혼 등을 앞두고 응원하는 가족들은 상담(?)하러 점쟁이를 찾아간다. 요즘 명리학이 뜬다고 한다. 예나 이제나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마찬가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살았던 때엔 별을 보고 예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령 이렇게 말한다. “형혹성이 심성을 차지했으니 간신이 권세를 휘두를 조짐이다”, “천랑성이 자미성을 침범하니 내년에 병란이 일어날 조짐이다.” 다산 선생은 일축했다. 별의 행로란 법칙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별은 제 궤도를 따라 돌 뿐인데, 저런 식으로 예언하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짓이다.

다산 선생은 ‘오학론’이란 글에서 이런 점성술을 포함해 점치는 것, 관상 보는 것 등을 모두 ‘혹술’이라 했다. 지혜로운 옛 성현도 재앙을 미리 알지 못해서 고초를 겪곤 했는데, 미리 아는 자를 찾아 기대려는 것은 미혹된 일이라고 했다. 미래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단호한 다산 선생의 말씀에 모두들 재미없어 할지 모르겠다.

필자도 가끔 점을 보러 갔다.간혹 사나운 말로 겁을 주는 점쟁이도 있지만, 베테랑 점쟁이는 나름대로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 어려운 때 찾아가면, 동쪽에서 귀인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누가 귀인일까. 어떤 때는 좋은 일이라며, ‘호사다마’이니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거의 여름엔 물조심, 겨울엔 불조심 수준이 아닌가.

점쟁이들이 활용하기도 하는 ‘주역’을 보면, 완벽하게 좋은 괘도, 완벽하게 나쁜 괘도 없다. 계절이 바뀌듯 바뀌는 게 운이다. ‘주역’의 가르침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말로 요약하는데, 궁할 때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사람의 몫일 따름이다. 사람의 앞날을 누가 알랴! 2020년 새해에 일어날 일이 모두 화일 수도 없고, 모두 복일 수도 없다.

화인 것처럼 보였으나 복의 근원이고, 복인 것처럼 보였으나 화의 근원일 수 있다. 하나의 일에서 화와 복이 동시에 나올 수도 있다. 인간에게 필연적인 죽음의 문제를 논외로 치고 나면, 분명한 것은 새해 1년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선물로 받은 2020년을 어떻게 보낼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다산 선생은 ‘어사재기’란 글에서, “지난 일은 좇을 수 없고, 오는 일은 기약할 수 없으니, 천하에 지금 누리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것도 오늘 내가 한 일과 연관된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모두에게 축하할 일이다.

지혜가 없어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 못했고,알아도 용기를 내지 못했.그래서 새해를 축복하는 범종이 울렸지만 우리의 앞날은 온통 잿빛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범종이 돼야 한다.지옥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울림이 우리의 몫이 돼야 한다. 자신의 몸을 때려 소리를 내는 범종처럼 새해에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우리의 무지와 나태함과 나약함을 참회해야 한다.세상을 울리는 범종이 많아질수록 울림은 더욱 웅장해지고 그만큼 세상은 훨씬 맑아질 것이다. 새로운 한 해를! ‘소중한 2020년’을 소중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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