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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는 미루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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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는 미루는 것이 아니다
  • 박희경기자
  • 승인 2020.01.07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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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산이 크고 높으면 그 골짜기가 깊다. 또 산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반드시 골짜기가 있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정해진 관계에서 그의 존재는 언제나 높고 깊다. 자식의 귀가가 늦으면 어머니는 시계를 쳐다보지만 아버지는 대문을 바라보는 마음의 이치가 부모이고 아버지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투병 중이셨다.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시한부 인생을 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평소 건장한 체구를 가지셨는데 투병으로 인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얼굴은 마치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항상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폐암 말기로 판명된 아버지는 그저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면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었던 아버지는 그저 절망적인 표정으로 병원의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킬 뿐 별다른 말이 없으셨다.

“아버지, 아버지는 분명 이겨내실 거예요. 저는 그걸 믿어요. 그러니 힘내시고 끼니 거르지 마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으셨다. 아버지께서 병에 걸리고 나서야 저는 평소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반성도 했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석고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애정을 표시한 적도 없고,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것은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근엄했고 자식들에게 따뜻한 말 대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냉정한 성품이셨다.

아버지가 머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아버지께서 절망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의 그런 마음에 아랑곳없이 눈길도 주지 않으려 했다.

자식은 아버지의 절망을 이해하면서 수없이 아버지를 포옹하고 자식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아무리 아버지께서 평생 습관처럼 무뚝뚝한 성격을 아버지께서 눈을 감기 전에 그런 습관을 바꾸고 싶었고, 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에게 사랑의 교감을 가지고 싶었다. 자식의 사랑에 스스로 포옹을 할 수 있는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포옹하는 것은 포옹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버지에게 가족의 의미를 새기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을 준비하는 아버지에게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하고 아버지를 위해 그 정도는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아버지를 안고 싶어요.”자식은 아버지를 수없이 포옹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석고상처럼 자식의 포옹을 받아들이기만 했고, 무덤덤하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수없는 자식의 포옹에 아버지는 자식의 두 어깨를 감아왔고 거기엔 분명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자식의 포옹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고 당신 또한 자식을 안고 싶어 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그래 아주 좋구나. 너는 어떠냐?”그러면서 아버지는 먼저 팔을 벌렸고 자식을 끌어안는 팔에 힘이 실려 있었다.

끝없는 자식의 노력에 아버지께서 드디어 액션을 취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나의 귓가에 대고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평생 아버지에게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아버지도 너를 사랑한단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나 가셨다.

떠난 뒤의 후회는 의미가 없음을 몸소 느겼다. 경자년 새해가 밝은지도 8일이 지났다. 효도는 미루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더라도 올해에는 꼭 못다 한 효도를 실천해보자. 지금 시작하자. 부모님은 영원히 살아계실 분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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