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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5] 국민은 정치에 너무 많이 속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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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5] 국민은 정치에 너무 많이 속고 살았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2.23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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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 시인(본명 박남철, 1953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 한 시인으로 수필가로 왕성하게 창작 활동 중

 <함께 읽기> 같은 나이 또래 친한 이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친구’나 벗이 있지만, 나이 어릴 때 쓰는 말로는 ‘동무’가 가장 정겹다.
어깨동무, 길동무처럼 자연스럽게 쓰이던 말이 해방 후 남북이 갈라지면서, 특히 북쪽에서 늘 상 사용하는 말이 되면서 남쪽에선 기피어가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모임이 다 있지만 초등 동기회처럼 흐트러지는 곳이 또 있을까. 따지고 보면 남녀가 섞였으니 조심해야 하련만 거기에 가면 완전 무장해제가 된다.
부녀회장님 소리 듣던 그리도 도도하던 애란이도, 병원장 박사출신의 효성이도, 이쁜 걸 저 먼저 알았던 미란이도, 새침데기 형화도, 차(茶)연구가로 명인이된 미향이도, “야, 이 가시네야!”, “야, 이 머스매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곳이 바로 초딩동기회다.

제목인 ‘너무 많이 속고 살았어’를 떠올리며 읽다 보면 끝까지 다 읽어도 도대체 무엇에 속았다는 말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에 관한 힌트가 바로 이 시행이다.
그 파릇파릇한 얼굴은 다 어디 가고 “좀이 먹은 제 몫의 세월”이 얼굴 군데군데 드러나는 순간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사람 뉘 있을까.

“자본의 변두리에서 / 잡역부 노릇 하다 한 생을 철거하기에 / 지장이 없는 배역 하나씩 떠맡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러운 동무는 사회적으로 출세한 이들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거스르는, 조물주로부터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또 철거당한다고 할지언정 하등 지장 없는 자리에 우리는 대충 앉아 있다.

“뒷걸음치듯이 몇몇은 강문에서 경포대까지 / 반생을 몇 걸음으로 요약하면서 걸었다”
돌아보면 명치끝이 아려오는 어린 시절.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꿈을 좇아 얼마나 종종걸음 쳤었던가.
지난 세월을 글로 적으면 소설 열 권이 더 넘는다고 하지만 실상 요약하면 몇 줄밖에 안 됨을 잘 알면서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던 간밤의 / 풍경들이 또한 피안처럼 멀어라”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잡던 어린 시절은 피안(꿈의 세계)처럼 멀다. 좀 더 자라 백사장에 야전 틀어놓거나 통키타 치며 "그건 너"를 목이 터지게 불렀던 시절도 역시. 이제 어디를 가든 주역은커녕 조연 자리도 없다. 그래도 상심하지 않음은 우리모두는 우주의 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초등동기회. 굳이 자랑거릴 내세울 필요가 전혀 없는 모임. 만나면 추억의 퍼즐을 맞추며 가식 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심의 세계로 이 시는 우리를 이끌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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