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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 위기에 처한 갑오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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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 위기에 처한 갑오년의 기도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4.01.01 0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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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필자가 사는 고향 전남 순천은 말(馬)로 그것도 여덟마리의 팔마(八馬)로 유명한 고장이다. 순천시의 (구)승주군청 앞에는 ‘팔마비’라는 오래된 비석이 있고 순천시 죽도봉공원에는 ‘팔마탑’이 서 있다. 

순천시의 대표적 길 가운데 하나가 ‘팔마로’이고 학교도 ‘팔마초등학교’에서부터 ‘팔마중학교’, ‘팔마고등학교’까지 있다.

순천시의 대표적 문화제도 ‘팔마문화제’이고 체육관도 ‘팔마체육관’이며 순천소방서의 자문단도 ‘119팔마자문단’이다. 식당도 상호에 ‘팔마’를 즐겨 쓰고 지역 기업들도 ‘팔마’를 애용한다. 또 팔마 잘그리기로 유명한 동양화가 월암 오웅진 화백도 순천이 낳은 중견작가다. 

순천이 팔마로 유명한 것은 공직자의 청렴과 이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이 표현된 것으로 유래가 멀리 고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충렬왕 때 최 석이라는 사람이 승평(순천의 옛 지명)부사로 근무하다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가게 됐다. 백성들이 당시의 고을 풍속에 따라 이임하는 최부사에게 말 여덟 필을 바쳤다. 서울까지 가는 교통수단 겸 관리에게 주는 전별금 성격까지 포함된 것이다. 

사양하던 최 부사는 간청을 받아들였으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말들을 돌려보냈다. 이때 최 부사는 서울로 오는 도중에 태어난 망아지까지 함께 돌려보냈다. 

망아지까지 돌려받은 승평부 백성들이 최부사의 인품에 감동해서 비석을 세우고 이를 팔마비라 했다. 또 이를 계기로 백성들의 고혈로 이뤄지던 말 상납이 사라졌다. 

이 팔마비가 백성들이 스스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관 선정비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2014년의 갑오년과 1894년의 갑오년은 대내외적으로 격동의 환경이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위기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새해벽두에 순천의 팔마비에 얽힌 얘기를 한 이유는 독자들이 이미 눈치챘겠지만 올해는 갑오(甲午)년,말띠 해 중에서도 60년마다 돌아오는 청말띠 해에 해당한다. 

십이간지 중에서 말은 드높은 기상과 활력을 의미하며 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띤다고 한다. 예전엔 말띠 여성은 기질이 세다는 속설 때문에 말띠 해에는 여아 출산을 꺼리는 경향도 있었다. 진취적인 기상도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갑오년은 대체로 드센 말의 기운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해이기도 하다. 

1894년 갑오년은 나라의 운명에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큰 변화가 한꺼번에 연달아 발생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왕정이 끝을 향해 달리고 탐관오리의 학정이 절정에 달하면서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해가 120년 전 갑오년 4월의 봄이다. 

그해 7월에는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는 반상제를 폐지하는 조선최대의 개혁인 갑오개혁이 탄생했고 같은 시기에 조선의 땅을 전장으로 삼은 청일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청일전쟁은 천년 이상 조선을 지배하던 중국의 문물이 일본의 문물로 바뀐 계기로 작용했다. 

고려때인 1234년 갑오년은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삼별초’로 상징되는 길고도 험한 대몽항쟁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어찌 삼별초뿐이겠는가. 그 당시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역사는 아직도 ‘환향년’이라는 욕설로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내려오고 있다. “승평부에 세워졌던, 공직자에 대한 최초의 선정비인 팔마비는 2014년 갑오년에 새롭게 세워지길 희망한다.” 

이제 새롭게 맞게 되는 2014년의 갑오년은 우리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 것인가. 드높은 기상을 떨치는 해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상의 지나침으로 고통을 요구하는 해가 될 것인가. 어쩌면 2014년의 갑오년과 1894년의 갑오년은 대내외적으로 격동의 환경이 매우 유사하다.그만큼 위기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을 사이에 놓고 중국과 일본이 청일전쟁 직전과도 같은 대립양상을 빚고 있다. 센가쿠 열도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전투기와 군함을 출동시켜 군사적 대결도 불사하겠다고 벼리는 가운데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교과서에 실으며 영토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아베 총리가 신사참배를 강행, 전범 귀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들의 만행과 침략행위를 부정했다. 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최대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국민적 자존심과 존엄성을 짓밟았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또 어떤가. 여야가,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맞붙고 여기에 ‘종북’이라는 사상적 갈등까지 겹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12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120년 전 갑오년에는 없던 북한의 위협과 6월 지방선거까지 곁들이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하지만 2014년의 갑오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 선택은 지도자들의 리더쉽에서 결정된다고 할 때 승평부에 세워졌던 공직자에 대한 최초의 선정비인 팔마비는 2014년 갑오년에 새롭게 세워지길 희망한다. 

지도자의 참된 리더쉽은 국민의 감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의 참된 리더쉽을 통해 여야는 소통교감하고, 노사는 화합하는 한해를 위해 갑오년 새해 벽두, 산에 올라 기도라도 하고 싶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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