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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식칼럼-이산가족 상봉과 정치는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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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식칼럼-이산가족 상봉과 정치는 별개다
  • 대기자
  • 승인 2014.01.13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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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의한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북한은 나흘간 침묵을 지키다 지난 9일 남한탓을 하며 실무접촉을 거부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혈육을 만날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을 행사 나흘 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데 이어 이번 제의도 거부해 남북관계는 새해부터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은 지난 9일 통일부에 보낸 통지문에서 남측에서 전쟁연습이 그칠사이 없이 계속되고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겠는데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상봉을 마음편히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오는 3월 초 시작될 키리졸브 한·미 연례합동군사연습을 설 상봉의 거부 이유로 지목했고 또 설은 계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고려된다고 언급해 추운 겨울 날씨가 고령의 이산가족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통지문은 또 남측이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과 상반되게 새해 벽두부터 언론들과 전문가들, 당국자들까지 나서서 무엄한 언동을 했을 뿐 아니라 총포탄을 쏘아대며 전쟁연습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과 관련 우리 정부와 언론, 전문가 등이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시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북측의 제안은 지난해 가을 무산된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가 이산가족 실무접촉을 제의한 전통문을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발송했는데 통일부 앞으로 답신을 한 것을 보면 행사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다른 메시지, 즉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끌어들이고 싶은 속셈을 내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강조했듯이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와 무관한 인도주의의 문제다. 60년 전 전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느끼는 인간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정치, 경제적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비인도적 처사다. 통일부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을 분리해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도 북한의 상봉 거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한데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이산가족 상봉은 복잡한 조건을 달지 말고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민족적 과제다. 상봉신청자의 80.1%가 70대 이상 고령층이어서 해마다 4000명 이상이 세상을 하직하기 때문에 하루가 촉박한 상태다. 상봉 신청자 12만 9035명 가운데 이미 5만 6544명이 사망했다. 결국 북한은 남측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금강산관광 재개도 논의하는 두가지 조건이 충족해야 이산상봉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교수는 북한이 굳이 날씨 얘기를 들먹인 것은 금강산관광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고려해 언급해 봤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북측은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상봉 거부를 정당화하는 행태도 보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하간 북한의 거부로 설 명절에 맞춘 이산상봉은 일단 어렵게 됐다. 하지만 상봉카드는 여전히 살아있다. 북한이 상봉자체를 걷어찬게 아니라 이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부한 것이란게 통일부의 판단이다. 인도적 문제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 미루는건 북한에 부담이다. 지난해 추석을 전후한 상봉에 합의해 놓고 성사 나흘전인 9월 21일 일방적으로 연기한게 북측이란 측면에서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산상봉의 사전 준비단계인 실무접촉 자체를 회피한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의 정치 현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성택 숙청에 따른 체제 정비가 완비되지 않아 북한 지도부가 남북대화에 응할 여력이 부족할 것이라며 북측은 우리 정부가 금강산관광 등 남북관계 전반을 아우르는 고위급 회담 카드를 내밀지 않은 이상 당분간 정세를 관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렇듯 북한은 김정은의 신년사 여파인 듯 대남 전통문에서 극렬한 대남 비난은 피했다. 이를 두고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담당 비서 등 대남 라인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장성택 처형 이후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의 대남 유화 제스처와 궤를 같이하는 남북관계 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대남 전통문이 남측에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앞으로도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끝맺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북측의 태도 변화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새해 첫 대북 화두로 이산상봉을 제시하자 통일부는 5시간 만에 대북 전통문을 보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상봉 문제를 남북관계인 첫 단추로 표현했다. 아울러 북한은 전통문 말미에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면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게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결국 북한은 설 명절을 보낸후 자기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로 이산상봉을 제안하면서 상봉장인 금강산에서 관광재개 문제도 병행 논의하자는 쪽으로 제안해 올 가능성이 커보인다. 아무튼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어려운 또다른 이유로 북측이 시간적, 계절적 요인을 든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일이 촉박한 것도 사실이고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거동하기엔 날씨가 추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못 할 것은 아니다. 남북이 결심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거부했지만 따뜻한 봄에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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