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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 서길원칼럼-‘갑을 관계’의 담론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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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 서길원칼럼-‘갑을 관계’의 담론을 환영한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5.01.14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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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갑을'은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질서의 근간이자 법규이고 규율이다. 하지만 '갑을'은 단순히 권력행사를 주고 받는 계급장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과 임무의 포지션이다. 특권이 아니라는 것이다.연초부터 우리 사회는 ‘갑을 관계’로 소란스럽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을 비롯해서 위메프의 수습사원 전원 해고사건, 백화점 주차장, 매점에서의 직원 폭행 사건, 아파트 입주민의 경비원 욕설 및 폭행 사건 등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갑을 관계가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평등관계로 새롭게 조명하고 정립하는 기회이자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렇다.예전 같으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며 ‘별 일 아닌’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들이 최근 들어서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전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바뀐 세상을 ‘갑질’의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SNS로 대변되는 사회관계망으로 인해 세상을 어제와 오늘이 다를 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갑질’의 당사자들이 뒤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생각해보면 세상에 갑을 관계가 아닌 것이 없다. 권력자와 피권력자는 물론이고 사장과 종업원이 갑을관계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을이다. 회사가 갑을로 이뤄졌듯이 가정도 갑을로 구성되고 부부관계도 갑을이다.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깊은 산사의 사찰에도 갑을이 엄존하고 신의 가르침을 는 성당이나 교회에도 갑을은 상존한다.갑을은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질서의 근간이자 법규이고 규율이다.

하지만 갑을은 단순히 권력행사를 주고 받는 계급장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과 임무의 포지션이다. 특권이 아니라는 것이다.따라서 '갑은 악이고 을은 선'이라고 나, '갑은 가해자이고 을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은 경계해야 할 위험한 발상이다. 자연과 사물의 다양성 만큼 복잡한 관계가 갑을 관계이다.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할뿐만 아니라 갑안에 을이 있고 을안에 또 갑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를 지탱하는 갑을 관계를 마치 선악처럼 이분화시켜 바라보는가. 조상대대로 내려온 관존민비의 천박한 신분제도의 유전자가 은밀히 남아있는데다 사회가 그만큼 성숙치 못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력의 정당성이 오랜 세월 동안 부정돼 오면서 갑은 가해자였고 을은 언제나 피해자였던 것도 갑을관계를 계급장으로 바라보는 핵심 요인에서 비롯 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갑은 자신의 의무는 방기한 채 권리만 챙겨왔고 천부인격마저 차별하는 치졸하고 천박한 갑질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권력자 집단에 병역기피율이 높은 것이나 재력가 집단일 수록 탈세가 많은 것도 이상한 현실이 아닌 것은 우리사회의 큰 병리현상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너나없이 갑이라는 동아줄을 잡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쥐꼬리만한 갑의 위치도 뻐기고 싶은 권세가 되는 셈이다.

백화점 고객이 종업원의 인격을 짓밟거나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잘못된 갑질의 한 형태이다.우리사회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되 타인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갑과 을의 대등한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상호 존중되지 않는 한 사회민주화는 모래성에 불과할 뿐이다. 사회구조가 언제 붕괴될 지 알 수 없을 만큼 위험하고 취약하다는 말이다.연초부터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갑을 관계의 담론이 우리사회의 새로운 평등의 질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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