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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 서길원칼럼-조카의 대학 졸업식, 그리고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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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 서길원칼럼-조카의 대학 졸업식, 그리고 부끄러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5.02.25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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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12년에 걸친 신고의 젊음 끝에 얻게 되는 취업과 졸업에 조카는 웃었지만 삼촌은 속 시원히 웃지 못했다. - 조카딸이 어제 대학을 졸업했다. 학사모를 쓴 얼굴이 예쁘고 고왔다. 하지만 그런 조카를 보는 나의 얼굴에는 형용키 어려운 씁쓸함이 일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삼촌이 아닌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웠다.

조카는 어제 졸업식으로 학사모를 두 번 썼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4년 만에 졸업했지만 첫 번째는 4년제 대학을 5년 만에 졸업했다. 남자처럼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것도 아니고 휴학을 했던 것도 아니다. 이렇다 할 사고도 없었다. 굳이 사고라고 한다면 의도적인 학점부족으로 졸업을 유예하여 1년을 더 다닌 것이다.

스스로 정상을 비정상으로 바꾼 것은 취업문제였다.인문학을 전공한 조카는 취업이 확정되지 않는데다 가늠마저 할 수 없어 일부러 졸업을 포기했다. 반은 학생으로, 반은 취업준비생으로 1년을 더 다녔으나 결국은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졸업했다.졸업 후 조카는 편의점 알바생 등으로, 예식장 비정규직으로 2년간 세상의 쓴 맛을 본 뒤 동네 개인병원에서 알바와 비정규직의 중간지대 같은 어정쩡한 신분으로 또 다시 1년을 보냈다. 도시락을 싸 들고 제일 먼저 출근하여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의사나 환자의 심부름을 하며 젊음을 슬퍼했다. 그러다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간호대학에 재도전했다. 간호사 자격을 얻으면 취업이 잘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카의 대학생활은 9년, 서른 살의 나이에 두 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다행히도 취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12년에 걸친 신고의 젊음 끝에 얻게 되는 취업과 졸업에 조카는 웃었지만 삼촌은 속 시원히 웃지 못했다. 어느덧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조카는 '죄지은 듯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제일 기쁘다'고 말했다. 대학졸업 시즌이다. 사회로 진출하는 기쁨과 설레임의 시간이다. 하지만 정작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대책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졸업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조카가 첫 대학에서 졸업을 포기하기 위해 일부러 한 두 학점을 누락시킨 것처럼 졸업을 미룬 학생들은 이 계절에 무엇을 생각하며 보낼 것인가.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2011년 이전부터 졸업유예제를 시행중인 대학생 1만 명 이상 대학 26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졸업을 미룬 학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1년 8270명이던 졸업유예 신청자가 2013년에는 1만4975명으로 늘어나더니 지난해에는 1만8570명으로 증가했다. 3년 사이에 무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졸업하는 순간 백수의 대열에 가입하거나 졸업을 미루고 학생 아닌 학생이 된 그들에게 OECD국가가 어떻고, 국민소득이 어떻고 하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자 차라리 기만에 더 가깝다.그들 앞에는 최저임금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알바생의 신분과 비정규직이라는 서럽고 차가운 신분차별의 고용시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그나마 이들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까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수습사원에게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시킨 뒤 전원 해고를 해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소셜 커머스 업체 위메프나 견습직원들을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착취했던 ‘이상봉 디자이너’는 그 대표적 사례다.위메프는 수습사원들에게 일당 5만원씩을 주고 각 지역 음식점을 돌며 계약을 체결케 했다. 그 뒤 이들의 계약 성과만 따 먹고 전원 해고 하여 물의를 빚자 뒤 늦게 채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월급 견습생 10만원, 인턴 30만원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다 ‘2014 청년 착취대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덜 주고 조금이라도 더 착취하기 위한,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자본시장의 천박함이 우리의 젊은이들을 절망으로 내 몰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교통비나 식사만을 제공하는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노동 착취행태가 은전을 베풀듯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젊은이들의 열정에 대한 댓가라는 의미를 갖은 ‘열정 페이’는 취업을 위해 경력을 쌓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애절한 실정을 이용하는 악마적 고용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열정 페이’가 전문직에서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위선적이고 부도덕한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머잖아 노인천국의 고령사회를 맞아 노동력을 착취했던 세대의 노동에 우리의 늙음을 의탁해야 한다.오늘은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내일은 그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자 하는 염치없음이 조카의 대학 졸업식에서 느끼는 기성세대의 부끄러움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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