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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묻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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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묻지 말라
  • 허재열 <월성원자력 교육훈련센터 교수>
  • 승인 2014.01.12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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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 꼬마 인간 헴과 허는 미로에서 마법의 치즈를 찾아다닌다. 지난 1998년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원제: Who moved my cheese?)’는 전 세계인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한 우화를 통해 변화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알려준다.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생각과 행동도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이끌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혁신을 요구한다. 혁신(革新)이란 문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큰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풍부한 수력(水力)자원을 가진 캐나다는 1940년대에 이미 중수로형 원자력발전을 개척했다. 중동의 거대 산유국이 원자력발전소를 선택한 것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이는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는 지혜로운 판단이다. 또한 국민소득 7만 불의 UAE가 원전 건설국으로 우리나라를 택한 것도 되새겨볼 만하다. 지난해까지 있었던 국내 원자력계의 문제점은 변화를 거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변화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많은 것을 되돌아 봐야 했다. 기술력만을 자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편리를 위한 요령이 허용되던 시대 또한 이제는 아니다. ‘안전’을 넘어 ‘안심과 신뢰’로 원자력의 목표가 상향된 것이다.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서는 양질의 전력공급이라는 마법의 치즈는 결코 다시 찾을 수 없다. 마법의 치즈는 옮겨진 것이 아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결국 다 먹어치운 것이다. 변화를 읽었던 스니프와 스커리는 곧장 또 다른 치즈를 찾아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꼬마인간 허는 뒤늦게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고 미로 속을 헤매어 새로운 치즈를 찾아내는 환희를 만끽했다. 끝까지 빈 창고에 치즈가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렸던 헨은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제어케이블 허위서류로 인해 가동이 중단됐던 원자력 발전소들의 재가동 소식이 반갑다. 겨울철 전력수급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미로 속에서 드디어 새로운 치즈를 찾았다는 소식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는 치즈가 많다. 월성1호기 계속운전 등 산적한 현안들이 그것이다. 인간으로 하자면 심장과 두뇌까지 새로 교체한 월성1호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젊은 발전소로서 큰일을 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 산업계는 안주하지 말고, 또 언젠가 바닥날 치즈에 대비해야 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만 변하지 않는다. 올해는 갑오경장(甲午更張) 120년이 되는 해이다. 2014년 갑오년 청마해에 우리나라 원자력의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바꾸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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