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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우리의 영웅, 잃어버린 그의 유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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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우리의 영웅, 잃어버린 그의 유해를 찾아서
  • 김태승 <서울북부보훈지청 보상과>
  • 승인 2014.02.17 0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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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우리의 영웅, 안중근(1879∼1910)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5주년이 되는 해다. 안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지 한 세기가 흐른 지난달 19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역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됐다. 지난해 6월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긍정 검토 중이던 중국 정부에서 뜻밖에도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필자는 보훈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2007년 하얼빈역을 찾았을 당시 변변한 표지석 하나 없이 단지 삼각형으로 표시된 의거 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우리 정부의 외교역량에 대한 회한이 함께 했던 기억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돼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하신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안 의사의 묘가 현재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역에 있고, 그 묘는 유해가 없는 허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안 의사는 순국 직전에 조국이 해방되는 그때 자신을 고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후손들에게 남기셨으나 일제는 여러 핑계로 유해를 넘겨주지 않았고 안 의사를 묻은 정확한 위치도 알려주지 않은 채 패망했다. 광복 이후 안 의사의 유언대로 독립된 조국에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백범 김구 선생은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1949년 갑작스런 암살을 당하게 돼 더 이상 유해 찾기가 이뤄지지 못했다. 2007년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에 합의하면서 활기를 띠는 듯 보였지만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실질적인 공동조사는 무산됐다. 이후 우리 정부 주도로 유해발굴 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뤼순 감옥 일대가 도심개발과 자연재해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크게 훼손돼 그 유해를 찾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 정부에서 하얼빈역에 기념관을 개관하는 등 안 의사에 대해 한층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 우리 정부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유해 찾기에 나서야 할 때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 의사가 순국하기 직전에 남기신 이 유명한 유언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의 영웅을 조국의 묘역에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참배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실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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