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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8] ‘순천은 곁에 있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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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8] ‘순천은 곁에 있어도 그립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5.09.16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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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갈바람에 손짓하는 갈대숲 사이로 살 오른 짱뚱어와 곧 있음 흑두루미 가족 돌아와 훨훨 날고 뻘밭에서는 칠게, 밤게, 농게, 말똥게 등이 게네들끼리 까르르 웃어제끼는... ”

K형에게! 날이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따스함이 그리울 정도이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나 봅니다.

눈에 문득 들어 온 하늘은 한 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들녘의 풍성한 알곡은 다이아몬드보다 더욱 순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사계절이 불분명해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 계절만큼 아름다운 계절이 어디 있을까 싶네요.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려도 노래가 되어 흐를 것 같으니까요.

누군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김소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가슴 뛰게 했던 어느 날의 여인만이 어찌 그리움이겠습니까.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젊은 날의 나도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살다보면 삶을 채웠던 순간들이 모두 그리움입니다. 그립지 않은 게 어디 하나라도 있을까요. 이 계절은 삶의 순간들 그 자체가 모두 그리움이고 아픔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류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지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리움의 대상이 곁에 있어도 그 대상이 어찌할 수 없이 그립기만 하는 계절입니다.

K형! 이 계절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가요. 순천에 한 번 다녀가시지요. 산기슭의 드렁칡 넝쿨처럼 떠날 수 없는 사연들로 얽혀있겠지만 순천에 오시면 그 또한 핑계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뉴스를 들어 아시겠지만 지난 5일 이 곳 순천에서는 커다란 축제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제1호 '순천만국가정원' 선포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특정 지역의 생태정원을 국가정원으로 처음 선포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리산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 듯이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 1호로 선포된 것입니다. 앞으로 국가정원 2호, 3호가 계속 나오겠지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힐링 도시로 순천이 선정됐다는 의미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 선포에 앞서 지난 2013년에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33만평의 광활한 정원을 거닐다보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정원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는 이제 고속도로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 황톳길의 느린 질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순천만의 갈대가 추수를 기다리는 벼이삭처럼 노랗게 물들어가며 파아란 하늘아래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갈바람에 손짓하는 갈대숲 사이로 살 오른 짱뚱어와 곧 있음 흑두루미 가족 돌아와 훨훨 날고 뻘밭에서는 칠게, 밤게, 농게, 말똥게 등이 게네들끼리 까르르 웃어젖히는 순천만은 순천만의 자랑을 넘어섭니다.

세계적 여행 정보지인 ‘미슐랭 가이드’가 최고의 영예인 별 세 개로 적극 추천한 곳이 이 곳 순천만입니다. 2010년에는 UN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는 ‘리브컴 어워즈(LivCom Awards)대회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시에 이어 은상을 수상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앞서 2006년에는 연안습지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었고 지금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꼽고 있는 곳이 순천입니다.
순천만정원과 순천만을 걸으며 힐링된 몸과 마음을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아 짱뚱어 탕의 그 걸쭉한 맛으로 출출한 배를 달래셔도 좋습니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묶어가며 맘씨 좋고 솜씨 좋은 순천웃장 국밥집 아줌마의 인심에 젖는다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혹시 그리움의 카테고리에 옛 초가삼간 고향집이 있나요. 순천 낙안읍성에 들리세요. 훌쩍 커버린 탓에 작아져버린 돌담 울타리 너머로 코흘리개 어린 시절이 K형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했던 정지용의 ‘향수’ 한 소절이라도 불러보지 않고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계절입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우리나라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와 3대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로 조계종의 근본 도량인 송광사를 들려도 비울 수 있고 또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순천에 오실 때는 시계 줄을 풀어 놓고 오세요. 마치 졸음에 겨운 고양이처럼, 가을하늘 뭉게 구름처럼 포근하고 아늑하게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그렇게 둘이서 셋이서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그냥 혼자서 오시면 또 어떻습니까. 발길이 머무르는 곳마다 그대의 그리움이 눈길에 어릴 텐데요.
K형! 이 계절에는 순천이 곁에 있어도 분명, 순천이 그리울 겝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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