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최재혁의 데스크에서] 봄이 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다
상태바
[최재혁의 데스크에서] 봄이 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4.02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직 코로나19 백신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필요해 보인다.봄이다. 만물이 생동한다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그저 오는 봄은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엄동설한에 전멸한 생명들을 되살리려니 마땅히 얼마나 산통이 크겠는가. 그럼에도 올봄은 남다르게 아프다.우리는 지금 전쟁 중 이다.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공포증.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재앙이 바로 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어렸을 때 겪은 일이다. 처칠은 어느 날 스코틀랜드 시골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 살려 주세요!”하고 고함으로 구조를 요청했다.때 마침 근처에 있던 한 소년이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와 호수로 뛰어들어 위험에 처한 처칠을 구해냈다.

소년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알렉산더 플레밍이었다. 두 소년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 줄곧 형제처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세월이 흐른 몇 해 뒤 처칠이 방학을 맞아 옛날 죽을 고비를 넘긴 호수를 다시 찾아 플레밍을 만났다. 처칠은 자신을 구해준 플레밍에게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할 거니?”하고 물었다. 플레밍은 “나는 대학에 가서 의가 되는 게 꿈인데, 집안이 어려워 농사일을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친구의 사정을 마음 아프게 여긴 처칠은 집에 돌아 와 전후 사정을 얘기했고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플레밍이 런던의 의과대학에 들어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 뒤를 돌보아 주었다.노력 끝에 의사가 된 플레밍은 ‘면역(免疫)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에 나가 부상당한 군인들을 열심히 치료해 주었다. 플레밍은 전쟁이 끝난 뒤 더욱 노력한 끝에 ‘푸른곰팡이’가 만들어 내는 어떤 물질이 강력한 항균 작용을 하여 포도상구균 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거기에 더해 10여 년의 끈질긴 연구 끝에 세계 최초의 항생제인 ‘기적의 신약’ 페니실린을 탄생시켰다.

스물여섯 살에 국회의원이 돼 수상의 자리에 까지 오른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중 전쟁을 지휘하다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위기에 빠졌다. 그때 소식을 듣고 플레밍이 달려 왔다. 플레밍은 처칠에게 페니실린을 처방했고 그 것이 주효해 목숨을 건졌다. 플레밍은 어릴 때, 그리고 또 한 번 처칠의 목숨을 구했다. 어린 시절 한 때의 인연으로 두 번 씩이나 사경(死境)을 넘나든 두 사람의 사연은 감동적인 우정으로 화제가 되어 세상에 알려 졌고 신문, 잡지는 물론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됐다.

페니실린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전쟁 중 폐렴과 매독 등의 세균성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 가던 수십, 수백만 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냈다. 페니실린의 등장과 함께 인류의 수명은 1950년대 50세에서 현재 80세 이상으로 늘어났다. 학자들 가운데는 페니실린의 발명이 없었다면 현재 세계의 인구는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20세기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페니실린의 공로는 그만큼 컸다.

오늘날 학자들 간에는 처칠과 플레밍,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과 다르게 과대 포장돼 잘 못 알려졌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인류역사에 공헌했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페니실린의 발명으로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처칠(1874~1965) 역시 ‘처칠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공포로 뒤덮여 있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괴질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온 세계가 자욱한 안개처럼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한국, 일본, 홍콩, 마카오, 이란으로 번져 아시아를 휩쓸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이집트 등 아프리카,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남·북미, 호주 등 전 세계 5대주를 국경도 없이 파죽지세로 마구 확산되는 형세다.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 괴질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약이 있을 수 없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라야 마스크를 쓰고 비누로 30초 동안 깨끗이 손을 씻으라는 것과 기침 예절을 지키라는 것이 전부이니, 답답하기는 정부나 국민들이나 다를 게 없다.우리는 지금 코로나19 라는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말이 싸움이지, 사실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눈앞에 적이 보이지만 이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여기저기서 마구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으니 전쟁도 보통 전쟁이 아닌 고약한 재앙의 한 모습이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예언처럼 지금 지구의 종말이 온 것은 아닌지, 두렵다는 이들도 있다.지금 우리나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비상시국에 처해 있다. 국내는 감염 공포증으로 국민들이 전전긍긍이고, 해외에서는 한국인 입국 금지의 왕따를 피할 수 없으니 이중고(二重苦)에 처해있는 형국이다.

소위 국민 소득 3만 달러,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진면목이 이정도 인가를 보는 것 같아 창피한 생각을 금할 수없다. 흔히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질병을 기아(飢餓), 전쟁, 마약 과 함께 ‘인류의 4대 공적(公敵)’이라고 한다. 이번 코로나19는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 냉정함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선가 알프레드 플레밍의 페니실린 같은 기적의 신약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인지라, 그것을 믿고 싶다.

요즘 ‘춘래불사춘’이 세월을 넘어 요즘은 다른 의미를 담아 쓰이곤 한다. 봄철에 꽃샘추위가 닥칠 때도 쓰이고, 칼럼이나 뉴스에서 시기는 좋은데 상황이 녹록지 않을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용어가 됐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도 어울릴 듯하다. 4월과 5월로 이어지는 전국 각 지역의 봄 축제들도 지금으로서는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몫이다.

강원도에서는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강원형 긴급재난소득’,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금융지원’ 등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내놓는 등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계절의 봄이 다 가기 전에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기운과 함께 활기차야 할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많이 아픈 만큼 또 성숙한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지 않을까 한다.

이래저래 올 봄은 봄을 즐기기는 글렀다.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하다’던 2000여 년 전 중국의 미녀 왕소군의 고사가 생각난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마음의 봄이 오지 않은들 해야 할 일을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이 또한 조만간 이겨낼 것이라 믿고 싶다. 밝은 미래를 위해 조금씩만 더 힘을 내보자.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