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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5]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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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5]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치인을 보고 싶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5.0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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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3, 4선의 관록이 있고, 장관을 하고 판·검사를 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면 그들은 패할 줄 알면서도 '새벽 끝발'(?)기다리는 도박꾼에 불과할 뿐이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의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순환하는 계절에 따라 피웠던 꽃들도 벌써 지고 있다.

피고 지는 것이 어찌 꽃뿐이겠는가. 지난 4·15 총선이 그랬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151명의 초선의원이 탄생했다. 불출마를 했거나 또는 낙선했거나와 상관없이 같은 수의 국회의원의 뱃지가 낙엽이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돌아온 권토중래(權土重來)성 의원도 있을 터니 그 이상의 황금색 노란 뱃지가 떨어졌겠다.

그중에는 TV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보아오던 얼굴들이 사라졌다. 20대 국회를 쥐락펴락하며 내로라던 중진들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사라진 얼굴들로 인해 ‘밥맛을 잃게 하던 진상’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돼 기쁘게 생각하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더 보고 싶었는데 이젠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여기는 시청자도 있다.

호남지역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사라졌다. 4년 전 국민의당의 출현에 따른 돌풍을 타고 등장했던 인물들이 이번 총선에서는 모두 분루를 삼켰다. 광주·전남지역 18개 국회의원 뱃지 가운데 13개가 떨어지고, 떨어진 자리에 새로운 뱃지가 탄생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며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처하던 박지원 의원을 비롯해 광주지역 최다선으로 7선을 노리던 천정배 의원과 무소속으로도 당선될 만큼 파란만장한 역정을 이겨낸 박주선 의원 등 셀 수 없는 많은 명망가 적 국회의원들이 고배를 들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4·15 총선을 앞두고 호남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측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의 세찬 강풍이 감지됐다. 3, 4선의 뱃지 나이테도, 장관과 판·검사의 경력도, DJ의 후광도 ‘패전국의 지폐’처럼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민주당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떼어진 현역 뱃지의 당사자들은 예외 없이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완주했다. 누가 보아도 패배가 보이는 싸움에 뛰어들었다. 전장에서 기적 같은 이변을 기대하며 온몸을 불사른 후보자도 있었으며 시늉으로 완주한 뱃지의 당사자도 있었다.

어찌 됐건 끝이 뻔히 보이는 싸움에 뛰어들어 완주를 마친 ‘전직 국회의원’으로 불리게 될 그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에 묻고 싶은 게 있다. 궁금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달려야 했던 이유 말이다. 완주하겠다는 용기도 가상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이쯤에서 주어진 역할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해서다.

정치적 신념과 가치를 위해서였다면 묻지도 않겠다. ‘바보 노무현’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표를 얻기 위해 상대 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사진을 자신의 선거 홍보물에 사용하기도 했다. 단지 한 유기체의 생명 연장을 위한 본능으로 느껴졌고, 부끄러움은 유권자의 몫이 됐다.

앞서 말했다시피 경륜과 경력으로 보면 ‘감히’라는 표현을 써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그들이 우월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판단은 언제나 정확해야 한다. 3, 4선의 관록이 있고, 장관을 하고 판·검사를 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면 그들은 패할 줄 알면서도 '새벽 끝발'(?)기다리는 도박꾼에 불과할 뿐이다.

계절이 순환하며 꽃을 피우고, 또 피웠던 꽃을 지게 하듯이 그들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다. 이제 꽃이 질 때가 왔을 뿐이다. 그래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비록 영원하지는 못할지언정 계절의 부름을 받아 한 시절 꽃으로 피웠던 날이 그들에게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저야 할 자리를 알고 미련을 접었다면 그들의 미련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미련으로 남을 수 있었다.

모두가 그러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단 한 두 사람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첫 구절처럼 물러나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동안의 사랑에 감사한다. 저 역시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새로운 인물이 제가 못다 한 역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고별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환영 인사치고는 고약하지만, 그리고 부질없지만 이번 총선에서 새롭게 뱃지를 달게된 이들에게서라도 4년 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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