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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안 들킨 X이 들킨 X을 나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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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안 들킨 X이 들킨 X을 나무란다’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07.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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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안 들킨 X이 들킨 X을 나무란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두고 2018년 작고한 한 정치인의 촌철살인 같은 말이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를 도입한지 올해로 20년이 지났지만 제도보완은 물론 폐지론까지 등장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고위공직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국회의 검증과정이 날카로웠으나 최근에는 국회의 검증절차가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됐다.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 없는 장관급 인사들은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벌써 23명이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됐다. 박근혜정부 10명, 이명박정부 17명 노무현정부 3명 등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다.

인사청문회는 당초 대통령의 자의적인 인사권을 견제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고위공직자로 발탁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을 검증하기보다 변호에 집중하고 있으며, 야당은 무차별 폭로로 공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다. 그에게는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특히 공직후보자 시절 피의자 신분임에도 결국 장관에 임명됐다. 이후 우리 사회는 두 갈래로 나눠져 극심한 혼돈의 시절을 보냈다.

공직후보자 지명 이전에는 멀쩡했던 사람이 청문회에서 바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본인의 과거 언행은 물론 가족의 사생활까지 폭로되면서 장관기피 풍조까지 나왔다. 오죽했으면 ‘안 들킨 X이 들킨 X을 나무란다’고 했을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지나친 인신공격은 오히려 사회의 해가 되고 있다.

인사청문회 관련법은 2000년 2월 국회에서 제정됐다. 첫 인사청문회는 그해 6월 김대중정부 당시 이한동 국무총리의 임명 동의안이었다. 인사청문회가 TV로 생중계 되면서 초기에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깨끗하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고위 관료를 바라던 국민들은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과거 이력이 폭로되자 실망감과 함께 중도 낙마에 대한 여론의 불을 지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지명을 철회한 인사들도 속속 나타났다.

김대중정부 당시 중도 낙마한 인사는 국무총리 후보자 등 2명, 노무현정부 3명, 이명박정부 7명, 박근혜정부 5명, 문재인정부 7명 등이다. 하지만 청문회 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큰 의미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 인선과 관련해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 등 7대 원칙을 발표했다. 여기에 연루된 사람은 원천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서조항을 만들어 7대 원칙에 연루된 후보자도 피해갈 수 있게 만들어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관급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국회 청문회는 3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의원 1인당 7분 정도의 질문 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추가질문이 있지만 인사검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짧고 부족하다.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는 청문회를 마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고 국회의장은 대통령에게 경과 보고서를 제출한다. 경과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보고서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아도 임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문회 자체가 요식행위로 끝나는 것이다.

인사 청문 대상자는 국회의 동의와 표결이 필요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대법관 헌법재판소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등이다. 국회의 동의안 없이 임명이 가능한 고위공직자는 장관과 국정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합참의장 방통위원장 등이며 이들은 청문회 대상자들이다. 대통령 몫으로 임명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과 중앙선관위원 등 일부는 국회의 동의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는 문제가 많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후보자의 과거 행적은 물론 사생활까지 무차별하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밝혀지는 행적은 때로는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만큼 폭발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과 가족의 행적은 비공개가 필요하다. 보편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철저한 사전검증이 이루어졌을 때 공개해도 늦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후보자가 거짓 답변을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있어야 한다. 현행법에는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거짓 증언으로 위기 상황만 피해가면 된다는 인식도 있다. 미국은 1955년 이후 인사청문회를 통해 낙마한 공직자 비율이 5%에 그치고 있다. 철저한 사전검증으로 낙마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를 본받아 도입된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가 제대로 정착 하려면 이번 기회에 관련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로남불’이란 말을 듣지 않을 것 아닌가.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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