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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17] 세상이 온통 ‘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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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17] 세상이 온통 ‘뻥’이요!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8.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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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시인(1965년생)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불멸의 명작 '돈키호테'를 읽었거나, 읽지는 않았더라도 한두 번은 다 들어봤을 게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이 둘이 엮어나가는 에피소드에 눈을 주다 보면 황당하면서도 그 풍자성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깊어가는 가을 밤, 곁에서 ‘돈키호테’를 읽고 있던 아들이 화자(話者)에게 불현 듯 묻는다. "아빠 이거 다 뻥이지요?"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길을 나선 돈키호테 앞에 나타난 풍차를 거인으로 여겨 돌진하는 등 기행을 일삼는 그를 초등학교 3학년이 읽어도 황당했으리라.

그때 문득 화자는 어린 아들에게 / "설탕을 듬뿍 탄 와인을 한 잔 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도수 약한 와인이라 해도 제 엄마가 들었으면 기절초풍할 일, 고작 10살밖에 안 된 아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싶은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에는 없는 인물'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 하겠다.

“독한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면 / 창을 꼬나들고 달리는 늙은 기사도 만날 것이다" 즉 술 취하면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 아들에게 술을 사준다는 것도 뻥이요, 술 취하면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다고 함도 뻥이다. 다 뻥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말들이다.

‘뻥’이란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면서도 무언가가 터지거나 뚫릴 때(뻥튀기, 뻥뚫어 등)강하게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단순히 거짓말에서 벗어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시인이 노린 바는 아마도 그것일 게다.

돈키호테 속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보면서 '그대의 영혼은 그대 몸속에 간직되어 세상 누구 못지않게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바로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자유의지로 세상을 희롱하며 한 번 살아보라고 화자는 아들에게 권한다.

“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도무지 허무하여 / 살 수 없음을 그 아이가 불현듯 깨닫기를” 이 시에서 시인이 가장 힘 준 부분이다. 아들에게 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세상은 온통 뻥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도 ‘뻥’ 저기도 ‘뻥’ 뻥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뻥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진실과 거짓이 헷갈려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하도 거짓을 많이 듣다 보니 그게 진실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뻥의 세계에 살다 보니 뻥이 아니면 오히려 불편할 때도 더러 있다. 어떤 때는 차라리 뻥이었으면 할 때가 많다.

이왕 뻥으로 범벅된 세상이라면 앞으로 이런 뻥을 들어보았으면 한다. ‘코로나19 백신을 한국기업이 최초로 개발, 임상실험까지 마쳐 올 9월부터 상용화’, ‘남북한 최고 책임자들이 만나 통일을 논의한 결과 2021년 1월 1일을 기해 조건 없이 통일을 하기로 함’, ‘올 하반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최고 정점을 찍어 명실상부한 세계 10위 선진국으로 도약’ 모두 뻥으로 끝나겠지만...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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