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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여의도 패션과 양촌리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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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여의도 패션과 양촌리 패션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08.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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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 2개월을 조금 넘겼다. 여당의 상임위 독점과 부동산 3법으로 시끄럽던 국회가 이번에는 여성의원의 패션을 두고 말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논란 자체가 미개한 일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나 언론에 연일 등장하기 때문이다.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데 왜 문제를 만들까. 거론하는 자체가 괜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정치인의 옷차림이라는 점에서 시선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은 연예인과 별 차이가 없다. 많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유명인의 패션과 언행은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과거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패션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을 주고 있다.

국회의원의 패션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에서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영국과 브라질 등에서는 옷차림의 노출정도가 논란이 됐으며 내부 규정을 통해 의상을 제지하는 나라도 있다. 영국은 2018년 새로운 규정을 통해 재킷은 필수지만 넥타이는 선택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청바지나 티셔츠 군복 브랜드 로고 등이 새겨진 옷은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회의장에서 남성의 경우 코트와 모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여성의 옷차림은 ‘적절한 복장’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스포츠유니폼 군복 등의 제복과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의 품위를 훼손하는 차림은 지양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절한 복장은 어느 정도이고, 품위를 손상하는 복장은 어디까지인가. 이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그리고 객관적인 잣대도 없다. 결국 사회적 합의와 시대적 상황 등이 평가할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패션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회의원의 패션 논쟁도 결국은 사회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몇 개의 방송에서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를 상영하고 있다. 지금 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40대 이상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21일 시작해 2002년 12월29일 종영된 최장수 드라마다. 무려 22년 동안 1088회 방영됐고 극본을 쓴 작가만 15명에 이른다. ‘양촌리’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했으며 진솔한 농민들의 삶을 그린 휴머니즘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 있는 것은 출연진들의 나이이다. 극중 김 회장으로 나오는 최불암씨는 당시 만 40세였으며 김혜자씨는 39세에 시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리고 드라마의 감초역할을 했던 김수미씨는 31세에 ‘일용엄니’ 역을 맡았다. 일용이로 출연한 박은수씨가 김수미씨보다 실제 나이가 2살 많다는 것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드라마 ‘전원일기’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 농민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젊거나 늙거나 밭일을 하는 아낙네는 대부분 고무줄 통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남자들은 흙 묻은 티셔츠나 허름한 남방이 대부분이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양촌리 패션’은 다른 농촌 드라마와는 확실하게 구별됐다. 의상에서부터 신발까지 소품 하나하나가 현장감이 있었다.

당시 농민들은 이런 전원일기를 좋아했고, 농사 경험이 있는 많은 도시인들도 채널을 고정 시켰다. 하지만 평상시 이렇게 생활하던 ‘양촌리’ 사람들도 결혼식이나 마을의 행사가 있으면 나름대로의 복장을 갖추었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전원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빗대어 ‘양촌리 스타일’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그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품격이 있었고 질서가 있었다. 전원일기가 종영된 지 벌써 18년이 되어간다. 지금도 4개 이상의 채널에서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복장은 교복처럼 입는 제복이 아니다. 의원 개개인이 편하게 입으면 된다. 그렇다면 일하기 편한 복장이면 다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세계 각국이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해 놓은 것처럼 국회의원의 품위도 중요하지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원피스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국회의원의 복장이 잘못됐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복장이 일보다 먼저 논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그를 20대의 젊은이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보고 있다. 국민들의 생각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국회의원의 임무다. 패션에 대한 논쟁보다 그가 발의한 법안이 우선적으로 논쟁이 돼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몫이 아니라 국회의원 본인의 몫이다. 해묵은 논쟁,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는 것도 당사자로서는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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