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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부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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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부하 논쟁
  • 최재혁기자
  • 승인 2020.11.05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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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지난달 26일 사실상 마무리됐다. 정책과 민생은 없고 정쟁만 남았다는 비판이 많다. 이번 국정감사 성적표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하다.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하’란 발언이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윤 총장의 말은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감기간 내내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인가 아닌가를 놓고 소모적 논쟁도 연일 계속됐다.집권 여당에서는 ‘장관의 부하가 아니면 장관의 친구냐’라는 비난까지 하고 나섰고 야당에선 부하가 아니라고 옹호하기 바빴다. 부하란 직책상 자기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의 정치적 중립 목적에 따라 둔 장관과 총장이란 두 직제를 상급자와 하급자로 생각해도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국감장에서 보여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각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린지를 떠나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기준도 없고 원칙도 없어 보인다. 단위를 둘러싼 서구사회의 혼란이 미터법이 나오면서 완전히 사라진것처럼 우리사회도 원칙과 기준의 정립이 필요하다.추 장관이나 윤 총장 둘다 공직자다. 공직자는 국민이 아닌 어느 누구의 부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명을 받아야 한다. 공직자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명을 거역하는 공직자는 주권재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최근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냐, 아니냐’는 논쟁이 시끄럽다. 지난번 국회 검찰청 국정감사 자리에서 윤 총장이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천명한 것에 법무장관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윤 총장은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되고 검찰총장이라는 직제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 아닌가.사실 민주국가에서 법무부가 검찰을 통제하거나 좌지우지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헌법파괴 행위다. 군대처럼 부하라는 종속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권력의 부정부패를 공정하게 수사하지 못하게 된다.검찰청은 법무부 소속의 외청(外廳)이다. 그러나 일반적 외청과는 달리 수사와 공소에 있어서는 검사들 개개인이 단독적 기관이다. 검찰청의 수장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서 ‘청장’이라는 호칭과 달리 ‘총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검찰총장은 타 외청장과 달리 장관급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법난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은 바로 추 법무장관이 검찰을 ‘부하로 부리겠다’는 저의에서 비롯된다. 부하라고 한다면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검찰에 대한 외풍을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검찰 내부는 추 장관의 잇따른 감찰권 발동에 저항하고 있다. 한 검사는 ‘정부와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거나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지 않는 검사들을 인사로 좌천시키거나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요지의 비판 글을 쓰기도 했다.

정말 소설 같은 일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법무장관은 사기꾼의 말을 믿고 사기꾼을 잡는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겠다던 전임 법무장관은 재판이 시작되자 303번 입을 닫았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마피아 흉내를 냈다. 한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월성 1호기 관련 파일 444개를 조직적으로 삭제했다.희대의 블랙코미디가 성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권력이 정의의 기준이 된 탓이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소피스트의 궤변처럼 ‘힘-정의’로 여기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가장 힘센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그에 맞춰 법을 농단하는 현상은 그 결과물이다.일전에 추미애 법무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인사안에 반발하자 “내 명을 거역했다”고 소리쳤다. ‘거역’이라는 왕조시대의 언어까지 소환했지만 장관의 명은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민주국가에선 설령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자주 교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등에 업은 정의와 법치가 갈대처럼 춤을 추는 이유다.

집권층에서 “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검찰수장의 발언에 시비를 거는 모양이지만 어불성설이다. 공직자는 국민이 아닌 어느 누구의 부하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사람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행위는 왕의 발을 척도로 삼는 구시대로의 회귀일 뿐이다. ‘내 명’ 따위로 민주 원칙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1호 공무원인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명을 받는 곳은 국민이다. 공직자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부하다. 국민이 절대적 기준이다. 그것을 잊고 망동한다면 ‘국민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 주권재민의 원칙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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