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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김장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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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김장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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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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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절로 겨울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잘 안 쓰는 말이지만 예전에는 겨울을 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해 월동준비를 해야 했다. 두꺼운 옷은 물론이고, 구들장도 살펴봐야 하고, 마당 한 가득 연탄을 비롯해 땔감도 준비해야했다. 그러나 월동준비의 으뜸은 바로 김장이었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던 우리 식탁에 김장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쌍벽을 이룰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김장 비법은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중요한 가족유산인데 가장 전형적인 전승방법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는 것이다. 가정마다 특수한 김장방법을 배우는 것은 새로 결혼한 며느리에게 중요한 전통 문화적 순응이었다. 김치 산업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80%이상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아주는 김치를 먹는다. 이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가족협력과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장김치는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할 만큼 우리 고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장하면 가장 먼저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배추를 절이기 위해 행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싱싱한 배추를 쩍 갈라서 굵은 소금 솔솔 뿌려 배추를 한 소쿠리 절여두고, 산삼만큼 건강에 좋다는 가을무를 썰어 준비한 다음 생강,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등 양념과 버무려 김치 속을 마련한다. 김장을 하는 날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일해야 하지만, 김칫독 가득 김치를 꽉꽉 채우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김장은 작게는 온 가족의 대소사요, 크게는 이집 저집 온 마을의 잔치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누구 하나 김장 김치를 거저먹는 사람이 없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전날부터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셨던 것은 물론이요, 뒷방을 지키시던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장독이 들어갈 땅을 다지시거나 그것도 안 되면 간이라도 보며 “짜다”, “달다”,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을 더 넣어 봐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렇게 담근 김장김치는 한겨울 반찬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맨밥에 김장김치 쭉쭉 찢어 먹던 기억이며, 처마 끝에 고드름이 녹아내리는 춘삼월,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끓인 얼큰한 김치찌개, 노랗게 속이 익은 고구마에 얹어 먹던 붉은 김치의 맛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농림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 김장 배추 ․ 무의 생산량은 평년 수준이라고 한다. 코로나19와 태풍 등으로 생산량 감소가 우려됐지만 다행이 가을철 기상호조로 작황이 회복된 탓이다. 올해 4인 가구 기준 김장규모는 22포기 수준으로 김장비용은 30만9000원이 들며, 김장김치를 직접 담그겠다는 비중이 62%, 시판김치를 구매하겠다는 비중이 24%로 조사됐다.  

매년 이맘때면 종교단체, 기관,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사회복지시설, 결손가정, 불우이웃에 보낼 ‘사랑의 김치 나누기’행사를 한다. 공동작업인 김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확인 시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김장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은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에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가뜩이나 겨울나기가 버겁고 서러운 취약계층에게 김장김치 한 포기는 공동체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요즘은 냉장시설이 잘돼있어 김치를 오랫동안 보관해 먹을 수 있다. 올해는 농가도 돕고 맛있는 김치도 오래두고 먹을 수 있도록 집집마다 큰 맘 먹고 온 가족이 김장을 많이 했으면 한다. 가족 간의 정도 쌓고 김치 한 포기에 많은 전통적 문화와 추억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며, 고춧가루, 마늘 등 양념류가 값이 좀 비싸더라도 꼭 김장을 담가 우리의 전통 식품 문화를 기렸으면 한다. 보쌈과 갓 담근 김장김치.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함께 고생한 가족과 즐기는 기쁨은 요맘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싶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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