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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50] 정치인의 품격, 그리고 항문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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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50] 정치인의 품격, 그리고 항문의 정치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11.2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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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우리는 지금 가슴으로 하는 정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항문으로 하는 정치를 보고 산다. 증오의 정치, 항문의 정치는 지지자를 규합하는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결코 정당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집권을 원하는가. 그러면 항문을 닫고 가슴을 열어라.

며칠 전 신문을 보다 우연히 눈길이 가는 기사가 있어 꼼꼼히 읽었다.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기사화됐다.

알려졌지만 잠깐 소개하자면 보수단체가 추미애 법무장관 앞으로 ‘근조화환’을 보낸데 대해 김 위원장은 “아무리 미워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근조화환은 보내는 게 아니다”고 점잖게 나무랬다는 글이다. 기사는 그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들이 윤(석열) 총장 근조화환을 보내더라도 우리는 품격을 지키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보수의 품격’이다. 그의 글에서 4년 전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여사가 민주당 전당대회 때 했던 연설이 오버랩 됐다. 당시 미셸 여사는 “저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고상하게 간다”라고 말해 큰 화제를 낳았었다.

미셸 여사의 연설 차용 여부에 상관없이 그의 SNS 글은 보수의 품격을 넘어 정치인의 품격에 대한 생각과 함께 ‘품격을 지키고자 하는 정치인도 있구나’하는 긍정적 반응을 끄집어냈다.

그의 글 중 ‘버릇없고 상스러운 대깨문들의 행태이지’라는 부분이 그가 말한 ‘보수의 품격’에 대한 진정성을 훼손했지만 그 정도의 유치함이야 현실 정치판에서 귀엽게 보아줄 수도 있는 문제다.

당시 미셸 여사의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왜 민주당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인지를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흔히 ‘진흙밭의 개싸움’, 즉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불리는 우리의 정치판에서 ‘품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면 품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는 게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가 더 험한 말 퍼붓기를 잘하나 시합하는 막말 경연장의 정치판에서 여야 가릴 것 없고,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다. 정치인들이 배설한 욕과 혐오 발언은 지면에 옮기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왜 그런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한 보수나 진보가 없기 때문이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가면무도회의 배우처럼 신념이나 가치관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지역과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익집단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묻자.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친일과 독재를 두둔하고 옹호하는 집단이 보수인가. 이는 태극기부대를 보수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세력을 보수라고 부른다면 진정한 보수는 자진하던지 아니면 최소한 땅을 치고 통곡이라도 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 입만 열면 그저 ‘종북’입네, ‘좌빨’입네 외치면서 그걸 보수라고 주장한다면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구 세력의 명칭일 뿐이다.

보수가 부끄러운 이름의 대명사가 된 것은 그들이 말한 ‘좌빨’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에 목숨을 걸었던, 또 걸고 있는 자기 업보다.

그렇다고 진정한 진보는 또 있는가. 상대방을 ‘친일파’, ‘토착왜구’라고 몰아붙이거나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동지를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리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진정한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권력의 그늘에 기생하기 위해 군중에 아부하는 세력이 진보라면 그 역시 수구 세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어 이율배반적 행위로 자신의 영화를 추구하는 세력과 드러내놓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수구 세력의 차이는 인공지능(AI)도 감별 불능이다.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증오의 정치다. 증오의 정치는 쉽다. 철학도 필요 없고, 논리도 필요 없고, 신념도 필요 없다. 그저 감정의 배설로 증오를 부추기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가슴으로 하는 정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항문으로 하는 정치를 보고 산다.

증오의 정치, 항문의 정치는 지지자를 규합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정당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지난 총선이 교훈이다. 집권을 원하는가. 그러면 항문을 닫고 가슴을 열어라. 제발 품격 좀 갖추라는 말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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