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26] ‘삶의 낙법’ 부터 배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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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26] ‘삶의 낙법’ 부터 배워야 하겠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12.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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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시인(1939 ~ 2017)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함께 읽기> 아프리카 정글에서 얼룩말은 서서 잠을 잔다고 한다. 사자 같은 맹수가 공격해 올 때 빨리 발견, 달아나기 위해서다.

이 시는 '가장의 고독과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가장은 편한 자세로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컴컴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잠자다 새벽을 서서 맞아 일터로 향한다.

시인에게 아버지는, 즉 가장은 서서 자는 말이다. 편하게 자려면 누워서 자야 하건만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은 잘 때도 제대로 누워선 잠들지 못한다.

“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유도 도장이라면 ‘업어치기, 빗당겨치기, 어깨로메치기, 밭다리후리기 등의 공격기술부터 배우는 줄 알았는데, 웬걸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 배웠다고 했다” 즉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세상에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아들이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동안 아비는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 기를 쓰고 살았다” 왜냐하면 “한 번 넘어지면 그뿐 / 일어설 수 없다고 /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사는 터전(현실)은 그렇다. 넘어지면 누가 도와 일으켜 세워주려는 사람보다 밟으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아비는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 나는 서서 자는 말”이 되어야 했다.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 흐르는 물은 /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갑자기 아들에게 부끄러워진다. 아들이 넘어지면 일어나는 걸 배우는 동안 아비는 넘어지지 않고 남을 넘어뜨리는 걸 배우고 살았으니까. 넘어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은 결코 일어설 수 없다. 넘어지고 또 넘어짐이 실패한 삶이 아니라 넘어지고도 일어서지 않음이 실패한 삶이라는 걸 이 시는 가르쳐주고 있다. 넘어져도 쉬 일어날 수 있도록 ‘삶의 낙법’부터 배워야 하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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