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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로컬푸드가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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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로컬푸드가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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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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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정치가, 군인, 의사, 선생님, 박사 등등 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농사꾼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고 선생님도 웃었었다.

바늘 하나 꽂을 땅 한 평 없는 놈이 농사꾼이라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을 일이었다. 굶기가 다반사였고 학교에 가도 공부보다는 결식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옥수수 빵 찌는 곳에만 눈을 두고 있던 나에게 곳간에 쌀 쌓아놓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농사꾼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그렇지만 살면서 남들이 우습게 아는 농사꾼이라는 자격을 취득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내 소유의 농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농사일이란 것이 그저 남의 집에서의 날품팔이 정도였으니, 요즈음 식으로 표현 한다면 알바나 일용직 정도일 것이다.

짝사랑하는 고향처녀 뒤로하고 돈 벌어서 데리러오겠다는 다짐을 남기면서, 고향을 떠났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다시피하면서 20여년을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급기야는 중동근로현장까지 취업하기도 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사막위에 펼쳐지는 신기루(蜃氣樓;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를 바라보며 초록으로 덮힌 고향땅에서 농사를 짓는 직업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그렇게 20여년의 외지생활을 마치고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던 농지를 취득해 농사꾼으로 정착을 했다. 농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여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너무 컸었음을 깨달았다. 농사기술은 진보해 있었다.

폭설에 비닐하우스는 주저앉았으며 태풍에 비닐은 찢겨나갔고, 농작물은 수마에 휩쓸림을 당하기도 했다. 직장인들이 흔히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으러 갈까’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지만 농사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깨달았다.

농산물 값의 폭락과 롤러코스트(roller coaster)를 방불케 하는 경매 값은 영농의 의욕을 꺾었으며, 조족지혈(鳥足之血) 같은 수입으로 농가부채는 쌓여만 갔다. 잠 못 이루는 밤에 길거리의 호떡장사, 아파트경비, 공사장인부 등등을 마음으로 전전하다 새벽을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개장 소식은 나에게 한줄기 복음으로 들렸다.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판매된 내 농산물이 하루 고작 영양부추 다섯 단 이었을 때도 있었고 상추 네 봉지였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하면서 꾸준히 출하를 이어가니 매출금이 조금씩 상승그래프를 그렸다.

농협의 로컬푸드 관리․운영 담당자는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법과 비전을 제시하며, 출하 농업인들에게 잘 실천하여 줄 것을 당부했고 우리들은 행동으로 옮겼다. 우선 신선채소류의 경우 당일생산 당일판매 원칙을 지켰다. 농약사용량도 준수하며 안전농산물 생산을 최고 목표로 하고 출하했다.

이밖에도 깔끔한 포장처리 등 로컬푸드 출하농가로서 지켜야할 의무사항을 명확히 실천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와 공생관계라 생각하니 어느 농산물 하나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자의 얼굴과 이름이 상표가 되어 이름만 보고도 농산물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정직과 신뢰가 맺은 결과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농산물을 출하하면서 농사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었다.

조금이라도 정성이 가미된 농산물은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고 출하하는 농산물에 정성스런 마음한줌 더 얹어 포장했다. 순수했던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하여 농장의 이름도 풀씨 같은 사람이 꽃씨 같은 맘씨로 짓는 농사라는 뜻으로 ‘꽃씨맘씨농장’이라 지었다.

다들 힘들어하는 올해 코로나19 상황에도 포도, 오이, 콩 등 있는 대로 로컬푸드 직매장에 출하해 매출1억 원을 올렸다. 폭설에 주저앉은 비닐하우스, 홍수에 쓸려나간 농작물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었다.

초등학교 친구가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지금 그때의 장래희망에 맞추어서 직업 갖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장래희망이 농사꾼이었으며 지금 장래희망대로 농사를 짓고 있으니 역설적으로 말해도 성공한 삶 아니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 나의 성공한 삶은 로컬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나를 살린 셈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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