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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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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초심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1.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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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근대 이전의 한 나라의 주인은 통상적으로 왕으로 보았다. 왕권 통치가 수 천년을 지속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런 인식이었다. 그리스의 찬란한 민주제가 있기는 했지만 프랑스 대혁명을 기치로 왕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오게 되었고, 주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점차 발전하여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하였다는 미국만 보아도 국민이 과연 그 나라의 주인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의 편의에 따라서 국민들의 삶이나 목숨이 수시로 유린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왕들이 호령하던 전제주의 국가와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단지 지도자를 내 손으로 투표를 해서 뽑는 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위안이 되는가?

위키백과사전을 보자. “국민(people, nation)은 국가의 인적 요소 내지 항구적 소속원으로서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 개개인의 전체집합을 의미하고 국가에 소속하는 개개의 자연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은 국가 질서를 전제로 한 법적 개념으로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질서와 대립되는 사회적 개념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인 인민과 구별된다.

또한 국민은 법적 개념이라 혈연을 기초로 한 자연적, 문화적 개념인 민족과 구별된다. 개인 국민은 공유된 정체성을 통하여 구분되며 거의 선조, 부모 또는 혈연 등의 형태로 기원한다. 언어의 미세한 발음 차이로 자국민국 타 국민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반면에 두 국민이 신념, 지리적 위치, 언어가 다르지만 자신과 남의 시각에 같은 국민이라 믿는다”

우리가 학교 교육을 통해서 알게된 가장 유명한 ‘국민’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올까? 세계의 유명 정치가들이 격변기에 많은 말을 쏟아 내었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말은 1863년 11월 19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에서 했던 연설 중의 한마디가 아닐까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정부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는 것” 이 말은 꼭 정치가 아니드라도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맞을 때 인용하는 명언이다. 

국민은 권력이 있던 없던 한 나라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원이다. 주인을 잘 만나면 그런대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만 주인을 잘못 만나면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한다. 아무튼 희망보다 불안 속에 신축년(辛丑年)을 맞았다. 지난 1년 악전고투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끝을 알기 어렵고, 여전히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사회적 격변도 현재로선 예측 불가다. 4·15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 브레이크 없는 입법독주는 입법독재란 반발을 불러왔고 진영 목소리를 제외한 비판에는 ‘토착왜구’, ‘가짜뉴스’란 프레임에 가두려 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요구에 굴복한 ‘반인권법’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천안함 왜곡 처벌법은 5·18 왜곡 처벌법과 달리, 국방위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또 1가구 1주택법, 특정인을 겨냥한 대선출마 방지법, 전세 무기한 연장, 검찰청 폐지법 등 사법행정 체계를 뒤엎으려는 듯 ‘위험한 법안’도 쏟아졌다. 수사 기소권 분리 차원을 넘어 검찰청 자체를 없애거나 검찰총장의 검사 지휘권을 회수한다는 것이다. 공정성 담보를 위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상호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다. 그러나 정당성을 가지려면 공수처에는 왜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몰아주느냐는 반론에 답해야 한다.

공수처에는 현재 검찰과 같은 권한을 주면서 검찰에는 그 권한을 뺏는 것이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자가당착이 아닌가. 때문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라임·옵티머스 사기 연루,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정권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권력형 비리 수사의 원천 봉쇄란 말이 나온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막 나갈 수가 있는지, 정치금도가 사라진 지난해 평균적인 양심을 가졌다면 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 뒷걸음질 쳤던 경제는 더한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탈원전·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에 이어 1일부터 시행되는 50인 이상 299인 이하 업체에 대해 주 52시간제 초과 기업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5인 이상 49인 이하는 7월 1일부터다. 산업 현장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외면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사회·정치적 갈등과 반목도 거세지고 있다. ‘추·윤 갈등’이나 ‘보여주기식 쇼통’ ‘유체이탈 화법’, ‘선택적 침묵’ 등의 수식어가 이를 대변한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험언(險言)과 허언(虛言)의 성찬에 상처받고 분노했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살벌한 진영정치는 ‘포용’과 ‘협치’, ‘화합’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젠 코로나19로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세상, 다가올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양한 목소리를 고르게 존중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대선 전초전 본격화 등 ‘국민의 선택’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킬 것인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에 굴복할 것인가를 가리는 것은 국민 몫이다. 요즘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현 정부가 한가지 놓친 것이 있다. 무엇이든 단숨에 다 이루고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국민의 마음 읽기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생을 살피는 정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길 바라는 새해, 절망이 희망이 되고 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나라,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해 이기를 소망한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을 담아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춘풍추상’ 액자를 선물했다고 한다. 독재자와 새마을 경제일꾼의 대명사를 함께 지닌 박정희 대통령의 좌우명이라고도 하니 세상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요즈음 춘풍추상의 글귀가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디선가 거꾸로 사용하지 않나 싶다. 나와 우리 편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과 남의 편에게는 차가운 서릿발처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공평과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계속되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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