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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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2.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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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고 했던가? 그렇다. 이제 봄은 막 시작됐지만 봄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봄에 대한 목마른 그리움은 계속 쌓여가지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축년 2월3일은 봄이 온다는 입춘(立春)이다. 옛 날부터 궁(宮)에서 민가(民家)에 이르기 까지 가가호호(家家戶戶) 대문짝엔 새 봄을 맞아 집안에 크게 길하고 경사스런 일을 기원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첩(立春帖)이 나붙는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다시 흐르고 죽었던 나뭇가지에 파란 잎들이 새로 돋는다. 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봄 춘(春)’자는 ‘석 삼(三) + 사람 인(人) + 날 일(日)’자의 합성어다. 갑골문(胛骨文) 자전에서 ‘봄 춘(春)’자를 찾아본다.‘석 삼(三)’자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천지인(天地人)’을 뜻한다. 그렇다면 ‘봄 춘(春)’자는 ‘사람이 하늘과 땅(自然) 그리고 부모 조상의 가르침과 그 뜻을 깨우치는 날’이 아니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경천심(敬天心)’을 갖추며 생명의 바탕이 되는 대지(大地)를 감싸고 보호하는 ‘외경심(畏敬心)’과 지금의 나를 생존케 한 부모님과 조상님께 감사하는 ‘효행심(孝行心)’을 ‘새롭게 깨우치고 궁행(躬行)하는 날’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부터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첫 절기 2월 초 입춘이 되면 입춘서, 입춘방을 써붙였다. 이는 성종13년(1482)에 임금이 글을 지을 줄 아는 이도 많으니 입춘을 맞아 각자 글을 써 대문에 붙이라고 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실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입춘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 문신들에게 시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이나 용(龍), 호(虎) 글자를 거꾸로 붙이기도 했다. 후세에는 백성들도 입춘서를 붙여 두는 관습이 내려와서 대문에 흔히 ‘입춘대길’(立春大吉)과 짝이 되는 글귀로 ‘소원성취’(所願成就),나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썼다.

자꾸만 ‘들 입(入)’ 자를 마음으로 훔쳐와 썼다. 오독(誤讀)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지와 창공에 봄의 기운이 차오르고,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렸다! 때문에 입춘(立春)이라 쓰인 앞에서도 마음은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입춘(入春)이라 읽었다.

입춘(立春)은 ‘봄의 기운이 다다르다’라는 뜻이다. ‘설 립(立)’에는 물리적으로 선다, 설립하다는 의미뿐 아니라 ‘어떤 장소나 경우, 상황으로 나아가 다다르다’라는 뜻이 함께 있다. 서예가 다천(茶泉) 김종원은 ‘계절은 어떠한 지점으로 들고 나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해, 계절은 기운의 성립을 말하는 까닭으로, 입춘절은 봄의 기운이 자라나서 나아가 다다른 절기’라고 설명했다.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도 같은 이치로 찾아오는 절기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의 순서를 따르며, 거기에 세상만물이 들고 난다는 추론은 이 세계의 전모를 다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당한 착각일지 모른다. 기운이 성립했기에 계절이 온다. 다시 말해 도민의 마음을 오독하지 말자. 함부로 민의(民意)운운하며 타인의 뜻을 제멋대로 훔쳐 쓰지 말자. 민의는 자라나서 나아가 다다르는 것이다. 마침 지난 3일이 입춘(立春)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마냥 내걸고 싶은 계절이다. 아이들은 때때옷으로 세배가고, 어른들은 너나없이 그런 아이들을 예뻐했던 설날이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함께 가꿔가는 것이 세상이다. 이인삼각(二人三脚)과도 같은 것이 세상이려니!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배려해야만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독불장군이나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있을 수 없다. 수천 년에 걸친 인류역사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처럼 대접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세시 풍속은 옛날부터 전해 오는 우리 조상들의 관습으로 계절에 맞추어 행해지는 고유의 행사와 풍습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얼마 후가 되면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이어 올해도 예전처럼 즐거운 설 명절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루빨리 잃어버린 우리의 일상을 되찾길 희망하면서 잊혀가는 우리의 세시풍속을 다시금 되짚어 본다. 명절을 전후해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정월, 설 명절 간에 주로 행해졌다. 그 까닭은 정월이 농한기인데다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신성한 기운이 솟구쳐 인간의 기원이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 민족의 세시 풍속으로는 정월 초하룻날 설날이 있다. 설날에는 설빔을 차려 입고 차례를 지내며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성묘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달맞이와 다리밟기를 한다. 입춘에는 집안의 평안을 위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축을 써서 기둥과 대문에 붙이기도 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과 정신을 상징하며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뿌리가 되어왔다. 그 뿌리 위에 우리 선조들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산업화와 IT 시대가 도래하면서 설날을 비롯한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 풍속들이 잊혀가고 있는 같아 우려와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이어오면서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민족정신과 풍습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흔들림 없이 보존되고 계승·발전되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자 뿌리로 이어져가길 염원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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