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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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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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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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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육교를 건너며 마당을 쳐다보니 아들 녀석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집에 도착하여서 본 아들 녀석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그 얼굴은 낙담과 분노와 슬픔이 어우러진 비통한 모습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치켜뜬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이 없더니 눈물방울을 그렁거리며 누가 자전거를 훔쳐갔다고 울먹였다. 자전거라면 아들 녀석이 오랜 날을 졸라서 겨우 사준 것인데, 며칠 만에 도둑을 맞은 것이다. 나로서도 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일이 더 급했다. 간수를 잘 할 것이지 그랬냐며, 아버지가 다음에 열무 팔면 그때 다시 사준다며 아들을 다독거렸다. 녀석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가 힘들게 공사판에서 일한 돈으로 사 준 것이라며, 내가 땀으로 마련했던 자전거에 더 의미 부여를 하며 아쉬워했다. 아들 녀석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허망해 하며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드러누웠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절망감을 어린 나이에 느꼈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그러한 절망감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결혼 후 취직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목구멍에 풀칠하기조차 힘들게 살고 있을 때이다. 남의 빚 좀 얻어서 경험도 없이 시작한 장사는 우리를 더욱 고달프고 힘들게 했다. 보다 못한 동네 형님 두 분이서 연탄장사라도 해서 처자 먹여 살리라고 보증을 서주며 연탄 운반할 수 있는 경운기를 한 대 사줬다.

우리 부부는 자가용을 처음 장만한 것처럼 경운기를 애지중지(愛之重之) 닦고 보물 1호로 생각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되지 않는 날 아침에 나가보니 경운기가 없어 졌다. 간밤에 도둑을 맞은 것이다. 순간 빈혈이 나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것이 어떤 경운기인데, 우리가족의 생계가 그 경운기 한 대에 다 실려 있는데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 같았다. 가족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며칠을 휘청거리는 다리로 경운기를 찾으러 다녔다. 그때엔 나도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상적인 기분으로 돌아온 아들은 열무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한겨울이라서 들에서 일하고도 목이 마르지 않았는데도 일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마실 물도 떠오고는 했다. 아들의 바람 때문이었는지 비닐하우스 속의 열무도 탐스럽게 자랐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열무를 뽑는 날, 아들 녀석은 기분이 들떠서 밭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열무가 과잉출하 되어서 값이 없으니 시장으로 출하시키지 말고 밭에서 폐기처분하란다.

누군가는 버려야 한다. 열무를 뽑는 대로 트랙터로 실어다 제방 옆 하천변에 버렸다. 내가 열무를 뽑아 버리는데 이웃하우스에서 남의 기분도 아랑곳없이 열무 담을 봉지를 빌리러 왔다. 열무를 팔면 자전거를 살 수 있다는 설렘으로 아들 녀석이 들판까지 나왔다. 우리가 열무를 뽑아버리고 남들은 작업하는 것을 본 아들은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우리도 비닐봉지에 담아 시장에 내다 팔자고 졸랐다. 저 집은 우리보다도 집도 훨씬 크고 잘 사는데, 못사는 우리가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들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울려는 아들을 바라보며 논두렁에 앉아서 독백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들아! 가난한 아버지를 이해해라. 아버지의 희생으로 열무가 제 값을 받는다면 마다 할 수 있겠냐, 내 가난이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킨 탓이라면 이 가난도 값진 것이 아니겠느냐 지금 네 눈에는 아비의 무능함으로 보이겠지만 네가 철이 들고 나이가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기억했을 때는 아버지의 처사가 옳았음을 알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눈의 초점까지 잃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오는 길이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아들 녀석의 눈에는 아버지가 무능하게 보일 것 같아 아들하고의 눈 맞추기가 거북스러워 아들을 뒤에 두고 앞서 걸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부자의 모습이 1948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의 마지막 장면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나 자전거 없어도 돼요. 자전거 타고 싶은 마음이 없어 졌거든요”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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