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최재혁의 데스크席] 물값 분쟁
상태바
[최재혁의 데스크席] 물값 분쟁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3.04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혁 지방부국장

영화 ‘허삼관’에 흥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한 인물이 보다 많은 피를 팔기 위해 강물을 연거푸 마시면서 “훗날에는 이 물도 사 마시는 날이 올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잘 예견하고 표현한 느낌이다.

오늘날 생수를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실을 보면, 짧은 기간 동안 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실제로 OECD가 발간한 2050 환경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물 부족(water-stressed) 국가로 평가돼 있다.

그러나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나오는 수돗물을 넉넉하게 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러한 심각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부터 ‘물쓰 듯하다’, '물 같다’ 등 물은 풍부하고 하찮다는 인식으로 인해 전기, 가스, 기름 등 다른 자원과 달리 소비형태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물값이 다른 자원만큼 비쌌다면, 이런 소비가 일어났겠는가?

대동강물 팔아먹은 김선달 얘기는 단순히 해학을 넘어 골계미에 이른다. 아호부터가 풍자적이다. 스스로 봉이라고 우겨 산 닭을 원님에게 바친 뒤 닭 주인에게 관청에서 맞은 맷값까지 받아내서 봉이다.

주막에 도포를 차려입고 며칠간 물지게꾼과 엽전 몇 닢으로 거래하는 척하며 한양 상인들을 끌어들인다. 그럴듯한 흥정으로 오르고 오른 강물값은 결국 4000냥에 낙찰된다. 황소 60마리 값이었다니 조선 후기 서민들에게 실감날 만한 최대 거금이었을 것 같다.

이런 패러디가 널리 퍼진 걸 보면 위선적 사회상에 대한 당시 민초들의 염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도성의 잘난 깍쟁이들이 강물을 돈 주고 사다니! 정말 바보야!’라는 조롱의 이면엔 ‘물은 당연히 공짜’라는 인식도 엿보인다.

세월이 흐른 19세기 말. 바다 건너 미국의 농축산물 거래 중심지 시카고에선 버터와 달걀 거래를 시작으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활동을 시작했다. CME는 이후 각종 농산물의 현물거래뿐 아니라 선물거래로 영역을 넓혔다.

이처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의 선물이 거래된다는 CME에서 마지막 남은 ‘핵심 자원’인 ‘물 선물’이 등장한다는 소식이다. CME는 나스닥 등과 손잡고 물값 급등락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는 선물을 연내 선보이기로 했다.물 선물은 캘리포니아주 물 시장의 거래가격을 반영해 작성된다.

농민 제조업체 등 물 수요자에게 물 부족이 초래할 위험을 관리할 수단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현재도 각종 지수와 원자재, 외환 등 다양한 상품의 선물거래뿐 아니라 가축과 육류, 밀, 콩, 버터, 목재, 우유 등 CME의 뿌리에 해당하는 농산물의 선물거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도 상품이 됐다. 값도 천차만별이다. 석유보다 비싼 지구 건너편 알프스생수가 들어오는가 하면 지역별로 청정브랜드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도 일상의 생활용수는 말 그대로 ‘물값’이다.

한국의 수돗물은 식수로도 나쁜 편이 아닌데,생산원가에도 훨씬 못 미친다. 공공요금이라는 수돗물값에는 김선달 시대의 물값 관념이 남아 있는 셈이다. 지자체들의 밑지는 계산 덕에 물값은 아직 국제적으로도 싼 편이다.

전국 곳곳에서 물 값인 정수구입비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와 충남 보령시, 충북 충주시 등이 정수구입비를 줄 수 없다며 예산을 삭감하고 버텼거나 버티고 있다. 이들은 공통점은 댐 주변지역이다. 댐이 없을 때는 수자원의 주인은 지역민이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면서 소유권은 수자원공사로 넘어갔다. 이 때문에 수십 년 간 정수구입비를 매년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 수십억 원을 수자원공사에 납부하고 있는데 댐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를 입는 마당에 예전에 내지 않던 물 값을 내다 보니 지역의 불만이 오죽하겠는가.

댐이 건설될 당시에는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철썩 같이 믿었고 무엇보다 군사독재시절이다 보니 반대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법률도 대부분 규제가 중심이 되고 있고 댐 주변 피해에 대한 들러리 수준에 불과하다.

세상은 민주주의 발전을 통해 국민 중심의 벌률로 많이 제정되고 개정됐지만 댐 관련 법들이 아직까지 수십 년 전 그대로다. 이렇다 보니 댐 주변지역민들의 불만은 고조될 수 밖에 없고 이게 정수구입비 갈등으로 표출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수자원공사도 법률에 따라 집행하기 때문에 법률이 개정되지 않는 한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은 충주댐으로 인해 안전한 식수를 확보했고 홍수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이 때문에 수도권이 지금처럼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국토의 균형발전이 중요하듯이 입법기관인 국회는 현실에 맞는 법 제정과 개정으로 댐 주변지역 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수자원공사도 법 탓 만 하지말고 정수구입비 분쟁 등 댐 주변 갈등에 대해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

그동안 물은 생존과 산업에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상품’이라는 인식은 많지 않았다. ‘물 쓰듯 한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물은 공짜라는 잠재의식도 뿌리가 깊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설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쌀 육류 등과 달리 선물거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물도 마침내 거래목록에 오르게 됐다. 물 부족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상이 아닌가 싶다. 물은 다른 대체수단이 없으며, 인류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고 시급히 확보되어야 할 귀중한 자원으로 인식하여야 할 시점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