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논단] 잠들지 않는 1100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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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잠들지 않는 1100고지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1.03.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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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제주는 70만 명의 도민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관광도시이다.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는 섬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나 현무암 등은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키가 큰 워싱토니아 야자수와 키가 작은 카나리아 야자수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바다와 어우러져 남방 특유의 운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제주가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기성세대와 식자들 사이에서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지만 육지의 20~30대들에겐 생소할 수 있다. 단순히 제주의 자연이 좋고 제주의 미각에 취해 제주를 찾는 경우가 많다.

제주의 역사를 모른 채 제주의 아름다움에 빠져 여행을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대 민주주의 과정에서 겪은 제주도민의 고통과 아픈 역사는 잊을 수 없는 유산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로마와 유럽 각국도 전쟁과 희생을 겪으면서 발전해 왔듯이 제주도도 해방이후부터 6.25가 끝날 때 까지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국회는 최근 제주 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의 큰 이견 없이 통과해 그 의미가 남달랐다. 70여 년 전 국가폭력으로 숨지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희생자들을 정부가 배상하거나 보상하고 구제할 수 있는 법안이다. 개정안에는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위자료 지급과 불법재판 수형자에 대한 특별재심 추진, 추가진상조사 등이 담겨져 있다. 배상과 보상은 약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4.3사건은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본격적인 사건은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한라산 중산간지방 오름마다 봉화가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350 여명의 무장대는 이날 새벽 경찰서와 시청 지서 등의 관공서와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시청의 탄압중지,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 등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토벌대와 무장대 일원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중산간지방에 있던 제주도민들을 비롯한 무고한 도민들이 무려 3만 여명이나 희생된 것이다. 이후 6.25전쟁이 발생하자 전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4.3관련 제주도민들은 즉결심판에 넘겨져 처형을 당해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 중산간마을 95%가 불에 타 없어졌으며 가옥도 4만여 채가 불에 탔다. 무차별 학살과 무차별 토벌이 이루어져 선량한 도민들이 대거 희생된 것이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에게 국가적 배상과 보상을 위한 근거가 특별법에 마련됐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제주도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한라산 종단 도로가 몇 개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도로는 1100도로라고 불리는 1139호선 지방도와 5.16도로라고 불리는 1131호선 지방도이다. 1100도로는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초등학교 교차로와 제주시 오라동 오라오거리를 잇는 도로다. 이 도로는 과거 국도 99호선이었으나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에 따라 지방도로 격하됐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도로로 한라산 1100고지를 통과하는 도로라고 하여 1100도로라고 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20여만 명이 제주도에 주둔하면서 처음 개설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1968년 폭력배를 대량으로 소탕하면서 약 500명의 인원을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배치해 도로건설에 투입했다. 제주도에는 이들 도로 외에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록도로와 평화로 남조로 등이 중산간지방에 위치해 현지 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면 한번쯤 지나가는 1100도로의 1100고지.
중산간지방에 위치해 4.3의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잠들지 않는 남도의 역사이다. 지금은 자생식물을 보호하고 관찰하는 곳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남로당 무장대와 국군 토벌대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곳이다. 때문에 중 산간지방에 생활하던 도민들은 이유 없이 처형당하거나 해안가로 이주해 빨갱이로 몰리며 생활했다.

현재 한라산 중턱에 민가가 없는 이유도 당시 토벌대의 방화와 강제이주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기억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1100고지는 제주 중산간지방의 아픔을 담아 사랑과 화합, 평화로 가는 새로운 인연의 시점이 되었으면 한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삶이 미래를 향해 힘차게 질주하는 제주의 역사가 되길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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