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스님같지 않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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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스님같지 않은 스님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3.18 1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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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사전적으로 ‘스님’은 승려가 자신의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스승님의 준말이 스님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최초의 승려가 된 이는 녹야원(鹿野苑)에서 첫 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다. 이들에게 스승은 위대한 부처님인 만큼 부처님의 제자들도 아라한과를 성취해 그 제자들에게 ‘스님’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한테나 ‘스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라마와 같은 분은 ‘(위대한) 스(승)님’이 맞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로 ‘스님’을 남용한다. 최근 한 SNS를 보면 어떤 승려는 자신을 ‘스님’이라고 서슴없이 소개한다. 겸손의 의미를 가진 ‘자신을 낮추는 마음’인 하심(下心)이 대승불교의 기본 요체인 것을 보면 스님이라고 불리기 위해서 출가한 것인지 정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한 신도는 전한다.

승려(僧侶)란 스님 또는 중이라고도 한다. 승가(僧伽: Samgha)라고 한 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衆)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음을 따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보통 승려는 5중(五衆)이라 하여 다섯 종류로 나뉜다. 구족계(具足戒)인 250계를 받은 남자 수행승 비구(比丘)와 348계를 받은 여자 수행승 비구니(比丘尼), 사미(沙彌) 십계를 받은 남자 사미(沙彌)와 여자 사미니(沙彌尼), 사미니에서 비구니 사이의 단계에서 특별히 부지런히 공부하는 여승인 식차마나(式叉摩那) 등이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넘어 소승, 대승, 금강승을 거친 우리 불교에서 정말 승려는 출가자만 가리키는 게 맞는가?

승려의 개념과는 별개로 출가자란 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로서 일가를 멀리 떠나 산속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어야 하고, 상행걸식(常行乞食)으로서 늘 밥을 빌어서 생활해야 하며 차제걸식(次第乞食)으로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우리 불교에서 진정한 출가자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됐다. 재가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3000배 정진을 꾸준히 하며 참선을 게을리 안 하는 청정한 수행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의 기본 즉, 불자라면 반드시 삼귀의를 해야 한다. 부처님이신 불(佛), 그의 가르침인 법(法)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승(僧)을 세 가지 보물, 삼보(三寶)라고 하고 이에 귀의하는 것을 불교라고도 한다. 하지만 삼보 중 하나인 거룩한 승(려)에 귀의해야 하는 것이지 머리만 깎은 무늬만 승려에 귀의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귀의문에서 승보의 개념은 거룩한 상가를 뜻한다.그런 상가는 사쌍팔배의 성자의 공동체를 뜻한다. 그래서 일반 신도들에게 예경의 대상이 되고 복전이 된다.이런 상가에 불자들은 귀의하고,의지하고,피난처로 삼는다.하지만 출가자가 아니라 재가에서 출가하지 않고 수행을 하는 이들은 승가가 아닌가? 문수보살을 가르친 유마거사의 예처럼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고려 말 나옹(懶翁)스님은 자심삼보(自心三寶)에 귀의할 것을 강조했다. 나옹은 귀의를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항상 분명히 깨달아서 허명영묘(虛明靈妙)하고 천연(天然) 그 자체로서 조그마한 조작도 없는 것을 ‘자심불보(自心佛寶)’, 탐애를 아주 떠나서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을 ‘자심법보(自心法寶)’, 청정해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것을 ‘자심승보(自心僧寶)’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이고 법이고 그렇게 실천한 이가 바로 승보라고 했다.

우리 사부대중 모두 부처님을 닮으려는 제자로 열심히 자신의 마음을 깨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상구보리 하화중생’,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바로 거룩한 스승이 된 사람으로 모두 승가다. 그런 이들이 출가했든 안 했든 바로 거룩한 스님이다. 지금처럼 아무한테나 거사나 보살이라고 하지 말고, 유마거사나 소성거사 원효를 비롯해 보림회 백봉 김기추 거사, 선도회 종달 이희익 거사, 그리고 한국불교연구원 이기영 교수와 같은 재가자로서 도력이 높은 분들만 거사라고 해야 한다. 또 인가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종정이나 방장이라고 해서 큰스님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처님과 같은 삶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서 우리의 스승이 됐던 수월 스님이나 성철스님 같은 분만 대사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승속이나 출가재가는 전혀 의미가 없다. 몇몇 종단에서는 머리를 기른 성직자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열심히 수행 정진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부처님을 닮아가는 제자들도 분명히 스님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스님이고 아니면 스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머리카락이 없는 출가자보다 머리카락을 기른 재가자로서 더욱 청정하고 수승한 이가 적지 않다.

따라서 최근 전북 정읍 내장산에 위치한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50대 승려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사찰 관계자들과 마찰을 빚다 홧김에 술을 마시고 대웅전에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단다. 그럼 사찰에 불을 지른 이 50대 종교인을 과연 어떻게 불러야 할까? 필자의 생각으로 그는 승려도, 중도, 스님도 아닌 자신과 신도들의 종교적 도량을 잿더미로 만든 방화범, 즉 범죄자는 스님도 아니며 승려도 아니며 성철스님 말씀처럼 그냥 ‘밥도둑’이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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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 2021-03-18 15:00:2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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