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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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3.2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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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왕궁의 앞마당은 화려하다. 그곳에 사는 왕자는 백마 탄 꽃미남, 공주는 동화 속 미녀 같다. 그러나 왕궁의 앞마당에 해가 비칠 때 뒷마당에는 그늘이 진다. 궁중궁궐의 암투 같은 잔혹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들 역시 왕가의 흑역사를 다룬 것이다.

최근 영국 왕실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화제를 모았다. 2년 전 해리 왕손과 결혼한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 왕손빈은 “왕실의 멸시와 인종차별 때문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폭로했다. 흑백 혼혈인 마클은 “(왕실에서) 아기의 피부색이 얼마나 검을지도 거론했다”며 울먹였다.

해리 왕손도 서운함을 토로하며 “어머니가 이런 상황을 알면 매우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생전에 남편(찰스 왕세자)의 불륜과 왕실의 냉대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의 고통을 받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바야흐로 폭로의 시대다. 과거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에 이어 공인의 학창시절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폭로하는 ‘폭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SNS와 익명 게시판이 깔아 놓은 판 위에서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참아왔던 억울함을 쉼 없이 외친다. 이들의 폭로는 이슈와 뉴스가 되고 대중들은 공분한다.

그리고 때로는 진실공방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폭로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감춰져 있던 사실, 흔히 나쁜 일이나 음모 따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오랫동안 감춰지고 숨겨졌던 진실의 힘은 크다. 우리는 미투 운동 이후 많은 가해자들은 뒤늦게나마 법의 심판 또는 사회적 응징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우리 사회는 폭로를 발판 삼아 그동안 외면했던 사회 이면의 폭력 문제를 직시하고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려 노력한다.최근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어린 시절 충격적인 학교폭력 사태가 피해자들에 의해 폭로되면서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과거에 숨겨졌거나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하소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피해자들이 법적 처벌 시효가 지난 사건도 ‘여론 재판’을 통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사회구조가 만어졌기 때문이라 보여 진다.

크고 작은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고, 그 수법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다. 저연령화·범죄화·흉포화·집단화 등의 특징으로 나타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파괴하고, 생명의 소중함도 경시하는 비인간적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철없던 시절의 학교폭력은 한갓 ‘장난’에 지날 뿐일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는 그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결국은 10년, 20년 지난 후에 폭로하게 되었고 피·가해자 모두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피해자들은 말한다. “말로만 하는 형식적 사과 받으면 뭐해요?”

반면 폭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들도 있다. 폭로를 악용하는 이들에 의해 무고한 대상이 폭로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들춰내면서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있다는 지적에 피해자가 제2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또 폭로의 주 창구가 언론에서 개인 SNS나 익명 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폭로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부분 폭로 사건은 명확한 증거가 없거나 법적으로 처벌이 어렵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들이다. 그래서 폭로에 기대는 이들은 강자보다 약자가 많다. ‘과거의 일이 현재가 될 수도 있다’는 명제는 이 시대의 많은 ‘을’들에겐 한 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또 이 사회의 많은 갑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폭로의 부작용을 이유로 이를 멈추거나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폭로를 검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 것이다. 결국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하다.변화무쌍한 청소년기의 감정을 긍정과 부정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감정코칭도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다.

맹자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의 하편 12장의 마지막 단락의 문구가 떠오른다. ‘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는 문구인데, 그 의미는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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