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료급식
상태바
[기고] 무료급식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3.31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어언 20년 전 이야기이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아내가 말했다. 아이가 엊그제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 아이의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학부형에게 인사 형식으로 띄우는 전화인 줄 알았단다. 전화의 내용은 아내의 예상을 빗나가서 우리 아이가 학교의 무료급식 대상자에 포함되었다는 얘기였다. 무료급식을 받는 아이의 자존심도 생각하여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선생님의 선처로 우리 아이를 그 대상에 포함시키고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부모의 의향을 타진하더란다.

아이의 담임을 맡은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짧은 시간에 어떻게 자기 반 학생들의 생활수준을 파악하고, 무료급식 대상자를 선정했는지 의문이 생겼단다. 자기가 담임 맡은 반으로 무료급식 대상 학생이 할당되었으니 찍기 하는 심정으로 뽑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서는 그렇게 성의 없이 일 처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엊그제 아들 녀석이 학교 제출용이라고 내민 신상기록카드를 작성해 준 것이 생각났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한다며 내민 기록용지에는 볼펜도 아닌 연필로 주소와 부모의 성명, 나이, 학력 등을 서투른 글씨로 적어 놨는데, 부모의 생년월일만 적지 못하였던 것이다. 생년월일을 적으며 아들 녀석이 미리 기록한 내용들을 훑어보니 부모의 학력사항에다 ‘고졸’이라고 살가죽에 문신 새기듯이 종잇장이 패이도록 써넣어 놨다.

자녀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작성했던 신상기록카드에 어이해서 나라고 허위 학력이라도 기재하고픈 마음이 없었겠는가.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정의롭게 살라고 강조하면서, 내 자신역시 허위로 학력을 기재하는 것이 양심에 걸려 국졸이라고 기재했다. 지금‘고졸’이라고 연필로 눌러쓴 글씨를 보니 아들의 어린 마음이었지만, 부모의 학력에 꽤나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마도 엊그제 작성했던 신상카드를 근거로 무료급식 대상자로 우리 아이를 선정한 것만 같았다. 꼭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가 선정될 수 있는 이유가 나름대로 몇 가지 잡혔다. 부모의 학력은 고졸이라고 허위로 기재해서 넘어갔다지만, 주소에서 산8번지가 선정 이유에 가산점(?)이 붙을 만했다. 요즈음은 아파트들도 재산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기존의 이름을 없애고 영어 발음이나 그 비슷한 이름으로 바꾼다고 했다. 아파트 평수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진다는데, 아파트는 고사하고 주소가 자연부락하고도 산8번지다. ‘산’자가 들어간 주소는 곧 빈곤의 대명사인 산동네에를 뜻하는 주소를 나타내는 것이다.

부모의 생년월일을 보니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직업은 농업이다. 농업이 경쟁력 없는 산업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빈곤 가정 아이들이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자연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아이의 바른 행동거지가 선생님의 눈에는 위축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행실이 올바르다고 그렇게 칭찬을 했다지만 그 말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얼마든지 각색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선생님이 다각도로 관찰하고 생각해 봐도 우리 애는 확고하리만치 급식 대상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 아내가 말했단다. 우리 형편은 아주 잘산다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담임 맡으신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세밀하게 아이들 가정형편 파악이 안 되었는지 모르니, 혹시나 나올지도 모를 도움을 받아야 할 학생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양보하겠다고 말했단다. 선생님께서는 고맙게 생각하며 부모님께서 교회에 나가신다고 하니 마음 씀씀이도 다르다고 말하더란다.

아내는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통화를 끝냈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에서 유료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지만 한 창 먹어야 할 때라며 아이가 학교에서 돌라올 시간이 되자 아이가 먹을 밥을 지었다. 밥통은 종착역에 다다른 증기 기관차처럼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김을 내뿜는데, 아내의 둥그렇게 활짝 핀 얼굴이 잘된 밥 퍼진 것처럼 밥통 옆에서 하얗게 퍼져 있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