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광의 세상보기]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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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광의 세상보기]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5.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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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광 (사)한국B.B.S경기도연맹 회장, 전 광주시의회 부의장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날(15일), 성년의날(17일), 부부의날(21일) 등 가정과 관련한 날이 유난히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5월은 법에서 정한 ‘청소년의 달’이다. 청소년기본법 제16조, 같은 법 시행령 제17조를 보면 매년 5월을 청소년의 달로 정하고 있다.

청소년 기본법 제3조에는 ‘청소년’을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으로 그 범위를 특정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 관련 법률에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청소년단체가 청소년의 인권증진 및 육성을 위한 각종 행사를 주최, 주관하는 노력을 하도록 여러 조문에 명시(明示)하고 있다.

5월을 청소년의 달로 지정한 것은 1980년부터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1967년부터 청소년, 학생 등이 중심이 된 농촌 계몽운동인 ‘4H클럽’ 행사가 5월에 정부가 지원하는 청소년 행사였다고 한다. 4H는 지성(head),·덕성(heart), 근로(hand), 건강(health)의 이념을 기반으로 10대에서 20대 연령의 청소년과 학생이 중심이 된 농촌계몽운동으로 해방직후 미군정 경기도지사 고문인 앤더슨(Charles A. Anderson) 대령이 소개해 경기도에서부터 활발하게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운동이다.

필자의 선친(先親, 박종진 초대 경기 광주시장)도 고교(高敎)시절 차재복, 남일우, 박동창, 이덕수, 김종호 등 지역선배들과 함께 서울 효자동에서 개최됐던 제1회 전국4H경진대회를 주관하고 ‘물레방아 상(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 4H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내가 청소년 운동단체인 BBS 경기도지회장을 맡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선친의 영향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5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人物)이 있다. 바로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1899~1931)선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정환 선생을 대개 ‘어린이 날’을 처음 만드신 분이라고만 알고 있다. 소파 방정환선생은 3·1운동 민족대표(民族代表) 33인 중 한 사람인 손병희(孫秉熙)님의 셋째 사위다. 소파 선생은 ‘어린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며, 당시 구독자 10만명의 베스트셀러 잡지인 ‘어린이’ 외에도 ‘학생’ ‘신여성’ ‘혜성’ ‘개벽’ ‘별건곤’ 등에 직간접적으로 깊이 관여한 출판인이었다.

소파는 189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1년 세상을 뜰 때까지 짧은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908년 ‘소년입지회’ 조직, 1917년 손병희 선생의 3녀 용화 여사와 결혼, 1918년 보성전문학교 입학, 1919년 3·1운동 때 일경에 피검, 1920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 입학, 1920년 ‘어린이’라는 말을 개벽지에 처음 사용, 1921년 ‘천도교 소년회’ 조직, 1922년 5월1일 ‘어린이의 날’ 발기 선포, 1922년 번안동화 ‘사랑의 선물’ 간행, 1923년 개벽(출판)사에서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 확대 제정. ‘색동회’ 창립,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개최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1983년 단국대 이재철 교수가 지은 소파 비문(碑文)에는 “(생략) 나라의 주권이 도적의 발굽 아래 짓밟혀 강산이 통곡과 한탄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선생은 나라의 장래는 오직 이 나라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라 깨닫고 종래 ‘애들’ ‘애놈’ 등으로 불리면서 종속윤리의 틀에 갇힌 호칭을 ‘어린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여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존댓말 쓰기를 부르짖었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외침이었다 하겠는가 (중략) 어린이를 위한 모임을 만들고 어린이를 위한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였으니 이는 나라 잃은 이 나라 어린이에게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얼’이 담긴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어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는 일이었고, 그를 탄압하려는 일제의 채찍은 경찰서와 형무소를 사랑방 드나들 듯 하게 하였다. 그처럼 눈부신 활약이 끝내는 건강을 크게 해쳐 마침내 젊은 나이로 홀연히 이승을 하직하면서 다만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한마디를 남기셨으니 뉘라서 이 정성이 애틋한 소망을 저버릴 수 있으리오(후략)”라고 쓰여 있다.

소파의 어린이 운동은 일제강점(日帝强占) 시대에서 장차 조선 독립의 역군이 될 인재를 키우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그의 비문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파는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이며, 독립 운동가이며, 미래 운동가였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도 소파선생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청소년 운동에 전력을 다 쏟았다. 청소년 운동은 이 나라의 미래운동이라는 확신(確信)과 혜안(慧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소년 기본법도 있고 여러 청소년 관련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만큼이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우리 청소년을 위해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해광 (사)한국B.B.S경기도연맹 회장, 전 광주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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