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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시론] 입양·한부모 ‘주홍글씨’ 지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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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시론] 입양·한부모 ‘주홍글씨’ 지울 때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5.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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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본 편집위원장
설동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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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의 일상과 출산, 그리고 입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해외입양 당사자인 엥겔스토프 감독이 직접 한국의 미혼모 시설에 머물며 그 아픔과 현상을 담아냈다.

영화 “엄마가 나를 포기한 줄 알았어요” 카피는 ‘무엇이 미혼모 엄마로 하여금 자신의 아기 양육을 포기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감독의 간절한 노력을 짐작케 한다.

선희 엥겔스토프(한국명 신선희)은 1982년 부산에서 출생, 그 후 덴마크 가족에게 입양돼 20살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친모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국의 미혼모 시설들을 방문한다. 그리고 미혼모들의 일상과 출산, 입양과 헤어짐을 스크린에서 풀어냈다.

엥겔스토프 감독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이해하는데 써야만 했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지 않아서였을까?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운명이었을까? 하지만 내 안의 그리움은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다고 회고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미혼모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양육 포기라는 갈등에 접한다. 한국 사회가 가지는 다름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가장 우군인 가족들에게서부터 외면 받는다. 미혼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하고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터득하기 전에 가족들로부터 아이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먼저 일깨우라는 ‘가르침’이다. 미혼모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울며 매달려도 보지만 주변인들은 입양을 ‘강요’한다.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라는 낙인은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된지 오래다. 

우리는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2016년 은비 사건, 2020년 정인이 사건,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화성 입양 학대 사건 등 입양아동과 관련한 끔찍한 사건들을 계속 보고 있다. 입양은 아동 인권의 문제다. 주체는 바로 입양아다. 그런데 입양 중심에 아이가 없다. 그저 입양기관과 양부모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우리에겐 또 입양아동을 보호하고 챙겨줄 국가도 없다. 입양가정에서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은 입양기관과 양부모만이 존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전쟁고아와 혼혈아 문제 해결을 위해 1954년 ‘고아양자특별조치법’을 만들어 해외입양을 장려했다. 국제입양 과정에서 입양아 1명에게 지불된 돈은 약 130달러였다. 입양은 민간기관에 맡겨졌다. 80년대엔 한 해에 8천여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기에 이른다. 아동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대가의 형태로 민간의 입양 중개 기관들이 만들어낸 거대산업이 꽈리를 틀었다. 입양기관은 아동을 입양시키고 그 양부모로부터 입양 수수료라는 이름의 재정적인 대가를 받는다.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아동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위해 입양 절차와 요건을 규정한 국제조약이다. 1993년 5월 29일 채택돼 1995년 5월 1일 발효됐다. 헤이그협약의 가장 큰 목적은 재정적 이익을 금지한다. 민간기관의 입양 결정 역할을 국가가 직접 하라는 게 협약 뼈대다. 우리 정부도 해외입양 최소화와 원가정 보호 유도에 찬성하며 헤이그협약에 이미 8년 전 서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국회 비준을 못 받고 있다.

입양 절차도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에게 문제없다고 판단되면 8시간 교육만 받는다. 예비 양부모는 입양 업무 위임기관에 서류를 제출하고 민간입양기관은 예비양부모를 조사한 뒤 자신들이 보호 중인 아이와 예비 양부모를 연결해 준다. 그리고 입양기관이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면 입양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허가율은 90%를 웃돈다. 이에 반해 유럽국가의 입양 부모 교육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나서 매우 철저하게 관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교육자 자격 요건도 까다롭다.

입양 심사와 교육의 엄격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정부가 이를 심사하고 깊이 개입할수록 좋다. 입양은 아동 보호를 위한 방안이다. 그렇기에 정부가 책임지고 담당해야 한다. 일부 입양 업무를 민간에 위임하더라도 정부의 감독과 감시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한국시민사회도 정부 정책 변화를 이끄는데 고삐를 조여야 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8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입양연대회의’의 입양의 공공성강화와 진실규명 활동이 주목되는 이유다.

입양은 엄마들의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가족과 사회가 미혼모들에게 입양을 강요하기에 앞서 아이 양육 방법을 알려주고, 정부가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준다면 타의에 의해 아이를 입양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지원 부족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모든 아동은 낳아준 부모 옆에 있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마지막 결정이 입양이라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은 말한다. “저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몸은 그녀를 찾습니다. 이는 마치 제 안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습니다.”

[전매시론] 설동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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