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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37] 낮춘 만큼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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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37] 낮춘 만큼 높아진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6.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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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시인(1955년생)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대구 영진고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함께 읽기> 지난 주말 집에 온 손주에게 아내가 “00아, 할머니 사랑하니?” 하고 묻는다.
“응”, “얼만큼 사랑하니?”, “하늘만큼, 땅만큼” 평소 외우고 다녔듯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하늘과 땅은 크기가 같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하지만 어른들은 ‘하늘과 땅 차이’란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혀 크기와 비중이 다르다. 즉 하늘에 비해 땅은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다.

“쓰레기와 몸을 섞으면서 / 지렁이와 함께 뒹굴면서 / 썩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 시체와 오래도록 누워있으면서” 굳이 시골에 살지 않더라도 주말농장에 들락 날락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게다. 낙엽 같은 자연의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가 잔뜩 쌓인 땅을 뒤적이면 지렁이가 우글거리고, 그런 흙이야말로 정말 기름진 땅이다. 땅의 가장 큰 덕을 필자는 '품는다'란 낱말로 정의하고 싶다. 즉 ‘쓰레기’가 버려져도, 징그러운 ‘지렁이’가 우글거려도, ‘음식물’이 썩어 고약한 냄새를 뿜어도, 온갖 동물의 시체가 묻혀도 땅은 그것을 품어 보석(기름진 땅)으로 만든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그대 / 땅땅거리지 않아서 기분 좋다” 쓰레기를 보석으로 바꾸는 신통한 재주가 있기에 땅땅거리며 뻐기련만 땅은 더없이 겸손하다.

"그대 하늘처럼 높다" 낮은 데로 임하면 높아지듯이 땅이 '품는다'란 자세를 견지하니까 하늘만큼 높아진다. 사람도 그렇다. 한껏 낮춘 만큼 높아진다. 결국 땅과 하늘은 같은 위치다. '하늘과 땅'이라 말하면서 순서를 매기는 듯 보이지만 우린 순서가 아니라 그저 부르는 차례일 뿐이라고 이 시는 말해주고 있다. ‘섞으면서’, ‘뒹굴면서’, ‘받아먹으면서’, ‘누워있으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정치는 없는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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