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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웃
  • 호남취재본부/ 구용배기자
  • 승인 2021.06.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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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논두렁의 풀을 깎는데 산 너머 동네 쪽에서 방송소리가 들렸다. 주민들 소집하는 방송소리 같았다. 벌판 건너 둑 밑에 위생환경사업소가 들러서며 곧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그것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문제 거리였다.

그것이 들어섰다가는 동네 이미지가 지저분해지고 냄새 또한 감당치 못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동네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일을 추진하는 시청에서는 건물부터 외관상 깨끗하고 작업 또한 위생적으로 처리되니 만치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민들과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부르는 명칭부터가 서로 달랐다. 시청에서는 ‘환경위생사업소’라는 관공서적인 점잖은 명칭을 사용했지만 동네주민들은 ‘똥통’이라고 격하시켜 불렀다.

엊그제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네들한테 오래 살다보니 지저분한 꼴만 보고 산다고 분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시(市)가 되었지만 과거의 읍(邑)이 면(面)이었을 때 김포쓰레기를 우리 동네 하천부지에 매립하면서 파리 떼에 시달렸었다. 그 후로 들어선 도살장에서 나는 시체 썩는 듯 한 냄새에는 얼마나 코를 혹사시켰던가? 그래도 동네 주민들은 싫은 말 한마디를 아꼈다.

그 동네 주민들이 이제는 참을 수 없다고 나섰다. 주민들이 공사현장을 향하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벌판길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논두렁을 깎는 나를 부르며 너는 우리 이웃 아니냐고 하는 소리를 듣고 데모 행렬에 동참했다. 현장에는 먼저 도착한 이웃들이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함축된 현수막 밑에 모여 섰고 좀 떨어져서는 닭장차를 중심으로 전투경찰이 한 무리 모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틈새로 TV 촬영 카메라도 보였다.

동네의 이웃들이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를 타고 속속 데모 행렬에 가담했고 직장에 출근한 남편대신 젖먹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엄마 뒤를 이어 자가용 한 대가 따라 들어왔다. 오토바이에 매달려온 할아버지나 경노당에서 화투패나 돌림직한 할머니도 쾌적한 동네를 위해서 더위에 땀을 흘리고 데모 행렬에 가담한 것인데 유모차 끌고 온 젊은 댁은 불참한 집에 불참 부과금이 부여된다는 근거 없는 말에 나왔다고 했다.

자가용에서 내린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인 우리 이웃이었는데 소속이 달랐다. 시청에 근무하는 동네 출신 과장과 계장이었다. 동네의 기득권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보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굽신하며 악수를 청하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한동네 이웃이지만 그들은 데모를 만류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고 우리는 데모를 해야 하는 상반된 임무를 갖고 대립을 해야 하는 서로의 적인데 이상하게 상황이 전개되었다.

시청 과장과 계장이 사람이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띠며 데모대를 비집고 다니며 악수를 청했다. 동네 사람들이 뭐를 수고하는지 시청 과장은 수고한다며 때도 되었는데 점심 식사나 하러 가자며 사람들을 종용했다. 데모를 하러 나온 이장 및 마을의 지도자급들과 일부의 사람들이 과장을 따라나서자 그 무리에 못 끼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으로 아는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매운탕 집으로 몰려 들어갔다.

데모대와 데모를 막으러 왔던 관공서 직원과 일치단결하여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다. TV 뉴스 촬영기사는 어이가 없어 일손을 놓았고 전투경찰들은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나름대로 감 잡았는지 닭장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 모양새를 보자 제초제 맞은 풀잎처럼 쳐져 버렸다.

애기 젖을 먹여야 한다는 젊은 댁과 더운데 이제 집에 가도 괜찮겠냐는 노인네 등 나를 비롯해 지도자를 잃고 둑 위에 쳐진 일부의 사람들로 급조된 이웃들은 전쟁에서 지휘자가 탈영한 군사들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뒹굴던 현수막을 둘둘 말아들고 흙먼지가 폴싹이는 제방도로를 걸어 들어오는데 날은 덥고 걸어도 그 자리인 것 같았다.

더위에 지쳐 힘없이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 동네에 남았던 이웃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는 소리에 아무 뜻도 담겨져 있지도 않은 건조한 소리로 아마 잘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 똥통은 말 그대로 잘되어서 능글거리며 잘 돌아가고 있고 이웃동네 녀석들은 “야 걸포리 동네 이것들아 얼마나 걸신이 들었으면 매운탕 한 그릇에 얻어먹으려고 그 짓거리를 했냐”라는 능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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