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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청와대 마음은 ‘대충 쓰는 말’에 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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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청와대 마음은 ‘대충 쓰는 말’에 담지 말 것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7.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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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40여년 소록도에서 한센인의 아픔을 돌보다 2005년 귀국한 마리안느 슈퇴거, 마가렛 피사렉 두 간호사에게 대사관을 통해 친전과 함께 선물을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연합뉴스)

...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 마가렛 간호사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에게 한글 친필 답신을 보냈다고 청와대는 7월 3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국빈방문 때 이들에게 친전과 홍삼 담요 등 선물을 전달했다. (뉴스1)

아름다운 이야기다. 숭고한 저 마음을 기려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여온 박병종 전 고흥군수는 “만나 뵐 때마다 착하고 장한 마음이 새롭게 가슴을 친다. 인류 희망의 새 깃발로 세워야 한다.”며 함께 나서달라고 늘 당부한다. 국내외의 공감이 크다.

그런데, 대통령 내외가 보낸 것 중 하나가 ‘친전’이란다. 親展 한자를 괄호 안에 넣기도 했다.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그렇게 썼다. 동아일보 등 소수는 이 단어를 빼고 썼다.

‘높은 사람이 보내는 편지’로 오해했을까? 당황스럽다. 친전은 편지가 아니다. ‘몸소(親) 펴보라(展)’는 뜻으로 봉투에 적는 표시다. 하사(下賜)나 접견(接見) 따위 거드름의 거품 끈끈한 ‘정치용어’로 착각했을까? 누가? 청와대 공보조직이? 기자가?

간절한 마음이나 비밀정보가 담겼으니 남에게 보이지 말고, 받는 이가 직접 열고 읽으라는 표시다. 물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열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1급 비밀’같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쓰이는 말이다.

들어본 것은 같은데 그 뜻 또록또록하게 알지 못한 사람의 ‘작품’이겠다. 대세(大勢)에 지장 없으면 그냥 가자, 쩨쩨하게 그런 걸 왈가왈부하나, 평지풍파(平地風波) 일으키지 말라 등의 반응도 나올 수 있겠다. 그러나, 따져보자.

저 ‘친전’ 표기로 인해 이미 수많은 우리 언중(言衆·같은 말을 쓰는 대중)들이 그 말의 뜻을 잘못 알게 됐다. 장담하건데 장차 친전이란 말을 저렇게 잘못 쓰는 경우가 자주 나올 터다.

친전편지, 친전서(親展書)로 쓰는 게 맞다. 말은 정확하고 경우에 맞아야 한다. 플로베르의 말이라며 글쓰기에서 회자되는 일물일어(一物一語)설은 진리라고 할 수는 없으되 일리는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 사회 여러 조직에 어문(語文) 검토와 개선을 위한 인식이나 능력이 없다. ‘친전’ 보도자료도 청와대 직원에 의해 만들어진 다음 여러 단계 책임자를 거쳤을 터다.

언론사도 이 자료로 기사를 썼다. 청와대 출입기자, 팀장(반장) 차장 부장 국장과 교열(校閱)부서 등 소위 ‘데스크 워크’의 부재(不在)가 드러나 보인다. 주는 대로 받아쓰고 기자 이름만 붙이는 것인가.. 기자는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다. 기레기여선 안 된다.

글을 ‘생산’할 때는 사실관계나 문장과 낱말의 잘잘못, 적절성 등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범람하는 가짜뉴스나 언어의 황폐화 현상은 이런 틈새에서도 생긴다. 정부 기업 단체 연예기획사나 이들의 홍보대행회사가 무식하거나 시민을 속이고자 한다면, 어찌 될꼬

‘마음은 소록도에 있다.’고 그녀는 썼다. ‘매일 우리나라(한국)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마음이 담겼다. 마음은,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써야 한다. 틀린 낱말은 아름답지 않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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