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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1]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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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1] 짜장면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7.2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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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1950년생)
경남 하동 출신으로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1982년에는 ‘조선일보’를 통해 소설가로도 등단.

 
<함께 읽기> 짜장면, 아마도 나이든 이라면 짜장면과 관련된 얘깃거리가 한둘쯤은 있을 게다. 필자도 그렇다.

고교 시절 반 친구들과 중국집에 갔다. 짜장면을 반쯤 먹고 있는데 잽싸게 먹어 치운 친구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당했다 싶어 억울했지만 늦게 먹고 나온 죄(?)로 주인에게 사정, 손목시계를  풀고 나왔다. 다음날 친구들이 시계를 찾아 주어 다시 짜장면을 사주었던 추억의 그시절 그 짜장면의 맛은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나이든 이들에게 짜장면은 아련한 추억을 몰고 오기에 어릴 때로 돌아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하지만 시인의 짜장면은 단순히 그리움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짜장면보다 검은 밤”, "밤비에 젖은 살", "젖은 담벼락", "밤비에 젖는 빈 가슴", "부러질지 모르는 나무젓가락 같은 삶", "비 젖어 꺼진 등불",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 저뿐 아니라 시를 읽는 이들은 다들 그리 느낄게다.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의 시어로 버무러져 있음을. 아련함보다는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다. 음식 전문가들에겐 ‘검은빛 요리’는 성공 못 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검은빛 짜장면이 국민 음식이 됨을 기적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즉 원조 격인 중국 짜장면은 황갈색이라는 사실을 들며...

짜장면에 들어가는 춘장의 빛깔은 검다. 묘하게 그 빛깔이 시인에게는 '밤'의 빛깔처럼 여겨졌나 보다. 어쩌면 검고 싼 춘장에 면을 비벼 후루룩 삼켜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꾸역꾸역 넘기는 그 검디검은 삶을 느꼈는지, 검은 밤에 내리는 비에 우리들의 몸이 마음이 젖는다. 그리고 가로등조차 꺼져 있다. 진한 검은 삶을 형상화하는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

거기다가 춘장에 담긴 짭조름한 맛은 살면서 느끼는 아픔의 맛과 닮았다고 볼 수 있고. 삶이 부러지기 쉬운 나무젓가락처럼 순간순간마다 고비가 찾아오고 있음을. 하지만 시인은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만의 삶으로 끝내지 않는다.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비록 검은 밤이 또 올지라도 걸어가겠다고, 세상이 꺼진 등불처럼 흔들리더라도 살아봐야겠다고 입술을 앙다물며 짜장면을 비빈다. 이때 먹는 짜장면은 그냥 한 그릇의 요기가 아니라 영양제가 된다. 코로나19에 지친 분들, 오늘 짜장면 한 그릇 배달해 드시고 힘내시기를 ...

이전까진 ‘짜장면’은 사투리로 취급되었으나 2011년 8월 31일부터 '자장면'과 '짜장면' 둘 다 복수 표준어가 되었음을 참고하시길.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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