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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쥴리벽화’는 꽃 같은 당신의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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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쥴리벽화’는 꽃 같은 당신의 자리가 아니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8.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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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꽃자리 좁다’라는 오래 전에 들었던 말, 인상적이었다. 남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마음그릇인 금도(襟度)가 없는 새가슴처럼 도량 좁은 사람의 그런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새겨보니 이 시적(詩的) 비유는 인간의 마음이 (원래) 꽃 아니냐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옹졸한 마음보, 못 생긴 심성을 저리 아름다운 말에 빗댄 뜻이 있었으리. 원래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줘 세상을 착하게 하고자 또는 ‘꽃자리 좁은’ 이들을 더 매섭게 꾸중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이 옹졸하고 쩨쩨한 놈들아”와 비교되지 않는가.

‘쥴리벽화’ 현상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마음이 과연 꽃자리인가 회의를 하곤 한다. 안치환 노래로도 기쁜 정지원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시를 생각하는 것이다. ‘꽃보다 당신’ 이미지도 있다. 사람을 향한 확신 ‘꽃자리 좁다’의 뜻밖의 뜻이겠다.

꽃 떨어진 자리, 꽃자리에 열매 달린다. 선명한 수박 꽃자리 때깔은 지 품은 붉은 결실을 자랑한다. 꽃자리가 사전의 ‘식물의 생식 기관의 일부’의 뜻에 그치지 않는 까닭이리라.

그 ‘꽃자리’들이 제 뜻을 이렇게, 꽃자리 좁게 펴는구나. 자기의 꽃인 제 아들딸들에게도 이럴까? 이 터전은 후손의 꽃자리다. 우리 것 아니다. 저 일부 인사들은 제 꽃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잠시 잊은 것이리라. 저를 더럽히는 것은 이 모두를 망치는 짓이니.

말은 사물의 본디를 가리킨다. 꽃자리는 처음 마음이어서 ‘처음’ ‘처음처럼’의 뜻으로 우리말에 스며있다. 차츰 사라져 가지만 본디 우리의 고운 심성과 이쁜 전통을 보듬고 있다.

신랑신부의 첫날밤 잠은 꽃잠이다. 술독에 박은 용수에서 맨 처음 떠내는 맑은 술은 꽃국, 소줏고리에서 맨 먼저 흘러나온 소주는 꽃소주다. 곰탕 설렁탕 요리에서 고기 뼈 푹 삶아 맹물 안 탄 진한 곰국을 꽃국물, 꽃물이라 한다.

어릴 적 우리는, 당신도, 시인이었다. ‘모란이 지고나면 그뿐 내 한 해는 가고 말아...’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인의 시였고, 당신의 시였다.

그 시인은 고운 마음은 지금 어디 있는가. 쥴리벽화 향해 온갖 쌍소리 그러모아 논리도 안서는 댓글질해대는 보람은 무엇인가. 처음 그 마음이 미움이었던가.

우리 열망했던 세상은 허망한 외래(外來) 이념의 싸움터가 아니다. 우리의 의의(意義)를 잊고 있었다. 우리 ‘지식’은 스스로 구원하지 않으며 인간소외를 주장했다. 세상 변화 핑계로 제 의무를 포기한 우리 꽃자리는 저 수박 꽃자리만큼의 역할을 하는가.

꽃대 든든해야 꽃자리는 튼실하다. 작가 이돈삼은 어느 글에서 “제 살림 무거워도 아우들 걱정 외면 않고, 필요할 때면 꾸중도 마다않는 어른이 꽃대다. 제 밥상만 챙기는 나이 먹은 이는 꼰대다”라고 ‘꽃대꼰대론’을 폈다. 꼰대 소리 듣더라도 꽃대 역할 하라는 얘기려니.

공생(共生)은 만물에 미치는 진리다.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우리가 말로, 또 손가락질로 경멸하고 훼손한 타인들이 결국은 공생의 범위의 ‘우리들’인 것이다. 하늘 찌르는 삿대질 아닌가. 산도 바다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괴롭히는 지금의 질병과 자연재해는 섭리의 조짐일 터다. 우리의 시스템(틀)이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정글을 벗어나야 한다는, 아직은 미약한 이 경고를 우리는 어찌 대할꼬.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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