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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적반하장-김두관이 설훈에게 ‘도둑’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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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적반하장-김두관이 설훈에게 ‘도둑’이라뇨?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8.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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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연꽃 아름다운 시기다. 둠벙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몇 송이에도 지나는 이들은 탄성을 지른다. 탐스럽고 이쁘고, 어딘지 범접 못할 품격이 있다. 우아함의 극치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등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 새긴 글 많다. 애련설은 ‘진흙에서 나왔으되 더럽혀지지 않고...’ 하는 연을 기리는 표현의 출처다.

정치동네에도 바야흐로 연꽃 와글거린다. 연꽃 든 이 말을 신무기 광선검(劍)처럼 휘두른다. 여차하면 상대에게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 씩씩거리는 언사(言辭)를 말하는 것이다. 애련설과는 다른 분위기다. 문자 속 좀 있는 이, 즉 한자 좀 아는 이는 이쯤에서 빙그레 웃는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란다’고 다들 아는 말이다. 도적 賊, 뒤엎을 反, 짊어질 荷, 지팡이 杖, 네 글자가 만들어내는 뜻이 절묘하다. ‘도적이 되레(反) 매를 든다’는 상황이 우리 언중(言衆) 사이에서 비유적으로 저렇게 쓰이는 것이다.

이 설명에 좀 당황할 이들도 있겠다. 비유적으로, 그러니까 빗대서 한 말이긴 해도 상대방을 도둑이라 부른 것 아닌가. 도둑의 칭호는 으레 ‘놈’이다. ‘도둑놈이 도리어 매를 휘두른다’는 뜻이 1번이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 없는 사람을 나무란다’는 2번.

뉴스 웹페이지에서 ‘적반하장’을 검색하면, 무수한 적방하장(의 상황)들이 나온다. 톺아보면 (비유적으로라도) 상대편를 ‘도둑놈’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장면들이 절반 이상이다. 예의상으로도 그렇다. 싸움을 잘 하는 방법은 싸가지 없는 말을 덜 쓰고 제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다.

‘김두관이 설훈에게 적반하장이라고 했다’는 한 신문의 제목, 유명한 두 신사의 언어로 맞는가? ‘도적(놈)이 되레 매를 든다’는 1번 뜻이 정치가나 기자에게 또렷했다면 독자가 이런 ‘도둑놈 타령’ 만나지 않아도 됐다. 참 마음에 안 든다. 맘이 불편하다. 그런데 왠 연꽃 타령?

염화시중(拈花示衆), 꽃(花)을 집어(拈) 무리(衆)에게 보인다(示)는 뜻, ‘염화시중의 미소’라고들 한다. 부처가 염화시중하자 제자 가섭이 홀로 미소 지었다. 불법 오묘한 얘기 아니더라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 꽃이 연꽃이다. 염하시중(拈荷示衆)이 될 수도 있었던 숙어다.

연(蓮)은 꽃도 이쁘지만, 그 너르고 둥근 잎에도 주목하자. 개구리 서너 녀석 뛰어 놀아도 낙낙할 정도다. 蓮과 같은 뜻인 하(荷)자 얘기다. 이 이미지가 싣다, 메다, 짊어지다라는 뜻으로 번져 쓰이는 까닭이다. 물류사업 용어 하물(荷物)은 화물(貨物)과 같은 뜻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는데 매(杖)를 들어(荷) 유감스런 뜻이 되고 말았지만, 여름철 화사한 배롱꽃과 함께 코로나-19와 무더위에 지친 중생을 위무(慰撫)하는 연꽃 荷라는 글자로 바꿔 생각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질 터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만 더, 이 숙어 적반하장을 꼭 써야 겠다면 그 상대방을 ‘도둑놈’이라고 부를만한 (불러도 좋은) 사안인지 곰곰 생각할 것. 또 상대의 나이나 지위 등도 고려해 뜻밖의 역습을 당하지 않도록 마련해야 할 터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 즉 인격의 척도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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