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칼럼]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이 선물하는 정선(旌善)으로의 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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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칼럼]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이 선물하는 정선(旌善)으로의 가을 여행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9.0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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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일 강원 정선경찰서장

여행(旅行)의 의미는 말 그대로 내가 사는 곳을 떠나 아무 욕심 없는 나그네처럼 이곳저곳 여러 동네를 마치 유람하듯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여행(travel)은 관광과는 달리 고대 프랑스의 트라베일(travail)에서 유래 되었고 또한 트라베일은 로마 시대 때에 사람을 뙤약볕 아래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기 위해 땅에 박은 세 개의 막대기인 고문 기구 ‘트라팔라움(tripalium)’이 그 어원이라니 결국 여행이란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선인들의 말씀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불가피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충전의 기회 혹은 힐링이라는 명목으로 가보지 않은 지역에 대한 행이 이제는 일상적인 필수품이 되었고, 해서 여행이 주는 묘미는 낯설음에 대한 설렘과 보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거나 그 지역 토착민들의 직간접적인 삶의 체험을 통해 자신의 성찰과 그리고 다시금 시작하는 일상에서의 자양분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가령 나 혼자 먼 목적지까지 기차 혹은 버스로 여행을 하게 될 경우 내 옆자리에 앉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문득 말을 걸고 싶거나 내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 상태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직 루빈(Zick Rubin)은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Strangeron a train phenomenon)’이라고 자신의 논문에서 기술했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이나 동료처럼 친밀하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 자칫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가 소원하게 느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은밀한 비밀이 새어 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후에는 또다시 만날 일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 내 속마음을 열고 자신의 개인사를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말하고자 하는 심리적 효과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닌 자기 고백으로 인한 마음의 위안이나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올 수 있는 반면,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해관계도 없는 관계로 비밀이 새어 나갈 우려도 거의 없고 말을 듣는 제3자 또한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보상 심리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고 루빈 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우리들 또한 힘든 시기에 다들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업무에 대한 부담이나 동료들로 인한 말 못 할 괴로움, 혹은 자녀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 다양한 이유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염병 정국에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처럼 실제로 낯선 제3자를 만나 내 자신을 들추어내는 대화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나 가능함을 감안하면 이즈음에는 오히려 강원도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정선의 숨은 절경을 찾아 힐링의 시간을 갖는 가을 여행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선 볼거리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래시장인 정선 5일장이나 아리랑의 발원지인 아우라지, 일제 강점기에 금광 채굴장이었던 화암동굴, 폐선로를 활용한 레일바이크, 높이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병방치의 스카이워크 및 짚 와이어, 아리랑을 재배치한 아라리촌과 공연장인 아리랑 센터, 본격적인 가을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민둥산의 억새, 원시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가리왕산 자연 휴양림과 백두대간 생태 수목원 등 다양하지만 이 중에서도 코로나 정국에는 동강길을 통해 만항재까지 가는 드라이브 코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이 구간은 교통량도 많지 않아 생각보다 여유로운 편이고 또한 동강길은 깎아지는 절벽과 한편으로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 혼재해 있고 조양강이 합류해 굽이굽이 한강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깊이를 그리고 바람 많고 해가 빨리 떨어지는 지역의 특성상 옥수수나 수수 및 콩, 사과 등의 특산 작물과 이동 길목에 위치한 507 미술관을 포함해 한반도 지형을 빼닮은 나리소 전망대, 동강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정상의 오토 캠핑장인 동강 전망대, 조명 하나 없이 외길을 통과 해야 하는 신동 예미리의 일명 귀신 터널 등 볼거리도 만만찮다.

물론 폐광지역으로 유명한 사북, 고한과 강원랜드를 지나 함백산(咸白山) 만항재에 오르기 전 삼척탄좌 정선영업소 자리를 문화센터로 개조한 삼탄아트마인과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인 정암사(淨巖寺) 및 경내에 자리 잡고 있는 국보 제332호 수마노탑은 속세에 찌든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정선 여행에서의 보너스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일엽지추(一葉知秋) 같은 작은 일렁임이 있을 때 그때 한 번쯤은 강원 정선 여행을 해 보시길 권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빠듯함과 어깨를 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정선만의 느린 미학이 그래서 천천히 물들어가는 정선의 가을 정취를 통해 마음의 여유를 또한 고단했던 탄부들의 삶의 기억을 더듬어 강인한 생명력의 선물까지 얻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동강길에서 만나는 정선은 한국 고유종인 동강할미꽃이 석회암 바위틈에서 봄마다 그 소박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삼탄아트마인에서는 수십 년 전 사북 고한에서 땀 흘렸던 당시 탄부들의 노고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해발 1,330m에 위치해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함백산 만항재의 가을 야생화를 통해 정선을 찾는 여행객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허허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정겨운 다독거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행은 빈 배낭 하나로 와서 가슴 가득한 힘과 새롭게 시작함에 대한 용기를 가지고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광일 강원 정선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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