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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2] 화천대유와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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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2] 화천대유와 가을 편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9.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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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내일이면 시월이다. 부(富)로도 살 수 없는 계절이다. ‘화천대유 하세요’ 하기보다는 가난한 마음의 시 한 수가 더 생각나는 계절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부자 되세요’로 바뀐 적이 있다. 덕담이랍시고 일반 직장인은 물론 경제인 정치인 법조인 가릴 것 없이 만나면 그저 ‘부자 되세요’라고 했다. 누구라고 부자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너도 부자 되세요’라고 화답까지 해야 되는 세상은 불편하고 민망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너도 부자 되고, 나도 부자 되자’라는 말이 덕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자는 경제인이나 정치가, 법조인이거나 그들을 부모로 둔 이들의 몫이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딸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부자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면 차라리 내숭을 떨더라도 ‘정치인이 되라’거나 ‘법조인이 되라’는 덕담이 더 솔직하다.

세월이 흘러 ‘부자 되세요.’의 덕담이 더욱 품위를 더해 ‘화천대유(火天大有) 하세요’로 바뀌어 대선 정국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공공토지개발사업의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가 자본금 대비 11만%의 수익을 낸데다 국민의힘 곽상도 국회의원의 아들(32)이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천대유 하세요’가 ‘부자 되세요’를 대신하고 있다. 곽 의원은 아들의 횡재가 문제가 되자 탈당했지만 아들 또래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허탈감은 분노가 되어 나라를 삼킬 정도다. 또 여기에 내노라하는 이 땅의 법조인들이 관련된 것으로 나타나 ‘법조인 되세요.’가 부를 기원하는 인사말이 되고 있다.

원래 화천대유는 주역의 64괘 중 ‘가만히 있어도 모든 운세가 형통하고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쉽게 해결’되는 가장 좋은 괘라고 한다. 주역 풀이처럼 화천대유는 장부상 출자금 5,000만원의 신생 자산관리회사이지만 민간투자자들은 3억 원 정도의 투자금으로 3년 동안 4천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곽 의원의 아들은 지난 2015년 6월 첫 직장으로 화천대유에 입사, 대리 직급으로 일하다 올 3월에 퇴직하면서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세상의 놀란 입들이 다물지를 못하고 있다.

곽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 처음 들어갔을 때 월 급여가 233만원에서 퇴직 무렵 383만원이었다고 밝혔다. 이 정도의 급여일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은 2,500만 원 정도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받은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와 그 아버지에게는 ‘열심히 일하면 6년 근속의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더욱이 화천대유에는 스타급 법조인들이 고문 자격으로 대거 포진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유명한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최서원으로 개명한 최순실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에서부터 김수남 전 검찰총장, 권순일 전 대법관,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등이 고문 등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은 법 전문가답게 ‘적법한 범위 내에서’ 또는 ‘공직자윤리법이나 김영란법 등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뒤 고문 등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하등 문제 없는데 왜 불편하게 그러느냐’는 것 같다.

그들이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법률적 자문을 했고, 자문의 대가로 얼마쯤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법’만이 능사가 아니다. ‘법이면 다냐’라는 국민들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은 정의의 수단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화천대유가 대선 정국에서 여야 최대 공방의 핵심으로 번지고 있다. 대선까지 또 어떻게 공수를 전환하고 모습을 바꿔가며 터질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부자 되세요’를 대신하고 있는 만사형통의 ‘화천대유’의 실체는 선거 정국에 올라탄 만큼 특검이건, 검찰수사이건 간에 반드시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 모습에 누군가는 ‘차라리 가난하세요’라고 자책할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시월이다. 부(富)로도 살 수 없는 계절이다. ‘화천대유 하세요’하기 보다는 가난한 마음의 시 한 수가 더 생각나는 계절이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 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의 ‘가을 편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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