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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1] 정치인의 말, 그리고 최경환과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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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1] 정치인의 말, 그리고 최경환과 문재인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4.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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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참으로 비겁한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했던 말을 슬그머니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일보다 더 큰 국민기만은 없다.

4·13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여야 모두 새로운 활로 모색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새누리당은 공천에서 내긴 뒤 무소속으로 당선된 인사들의 복당문제로,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간의 엇갈린 셈법으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여야 두 당은 해법을 찾기 위한 정답은 외면한 채 구태의연한 말장난을 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먼저 탈당인사들의 복당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는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선거 직전, ‘당을 탈당한 인사들에 대한 복당은 없다’고 단언했다. 원유철 원내대표와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의원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원 원내대표는 선거를 2주일 남짓 남겨두고 있던 지난달 27일 공천파동 끝에 탈당, 무소속 출마를 한 유승민 의원 등에 대해 “복당은 불가능하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의석수가 과반이 안돼도 무소속 당선자들을 안 받느냐’는 질문에 “안된다.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최경환 의원은 한 술 더 떴다. 선거 1주일 전이던 지난 7일 “내가 있는 한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은 절대 복당하지 못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새누리당이 무슨 자기 집 안방인가, 나왔다 들어갔다가. 그건 안 된다”고 복당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제 그 말을 지키면 된다. 적어도 원내대표의 말이었고 친박의 좌장격 인사가 국민들에게 공언했던 말이다. 그들의 위치가 주는 말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의미이다.

시중의 장삼이사(長三李四)도 자신이 했던 말에는 책임을 지고자 한다. 하물며 한나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투표용지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서는 안된다.

‘과반의석이 안돼도 복당은 없다’고 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고 ‘내가 있는 한 복당은 안된다’고 했으면 탈당인사들의 복당을 위해 그 말을 한 인사가 당을 떠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은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지고 둔갑하고 있다.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에 자신의 자리를 걸었던 최경환 의원은 “그건(탈당인사의 복당) 이제 당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이제 평의원인데 내가 할 얘기가 아니다”고 했다. 시정잡배(市井雜輩)가 웃을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대표의 말을 살펴보자. 문 전 대표는 선거 5일 전인 지난 8일 광주를 방문,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했다. 광주시민들을 향해 하는 말이었지만 대국민 선언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선거결과 광주에서는 8석 전체 의석을 국민의 당에 내주었다. 전남에서는 10석 가운데 겨우 1석을 건지고 전북에서는 역시 10석 가운데 2석을 건지는데 그쳤다.

확실하게 패했고 그가 말한 호남의 민심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 어떤 여지를 남겨둘 만한, 문 전대표의 말을 변호할 만한 결과는 없었다. 답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과라는 의미다.

때문에 문 전대표는 약속대로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 불출마를 하면 된다. 그런데도 그는 선거이후 말이 없다. 무슨 생각인지 정계은퇴나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여전히 더민주당의 주인 같은 행세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문 전대표나 모두 없었던 일로 치부하나 보다. 비겁한 일이다. 국민들이 정치에 절망하고 분노한 이유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과반의석 미달이 됐기 때문에 했던 말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는 참패했지만 전국적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했던 말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일 게다.

참으로 비겁한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했던 말을 슬그머니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일보다 더 큰 국민기만은 없다.

옹색하지만 그렇다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반 의석이야 문제없을 줄로 알고 큰 소리 쳤는데 잘못했다. 원내 제1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선거전에 했던 말을 취소하니 용서 바란다’라고 해야 한다.

‘하도 다급해서 정계은퇴를 한다고 하면 불쌍해서도 저를 지지해줄지 알았다. 그런데 호남에서는 전패하다시피 했지만 전국에서 승리하다보니 그 말이 후회막심이다. 대선출마하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 광주에서 했던 말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백번 낫다.

그럴때만이 국민들은 그들에게 과반수 의석을 맡길 수도 있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가 불신을 받는 이유는 이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나온다. 우리의 정치,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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