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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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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9.0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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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덥다고 하는 올해 여름. 지속되는 폭염과 열대야 속에 우리를 더욱 짜증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일탈 행동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주권재민'이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고위 관료가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라는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어 물의를 일으켰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올렸던 걸그룹의 멤버가 손 글씨로 반성문을 제출하고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작 정부가 출연한 국책 연구기관의 책임자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한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더해 뇌물 및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었고, 직권 남용과 횡령 혐의로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검찰 수사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는 최근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세계 3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는 27위를 차지한 한국의 위치를 잘 보여 주는 부끄러운 민낯의 다름 아니다.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인식 부재를 바라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떠올린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지도층에게 더욱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북 경주 교동의 최부자 집 이야기이다. 300여 년 동안 9대 진사, 12대 만석꾼으로 유명한 최씨 집안에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거나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가르침이 내려온다. 이는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고자 하는 욕심을 경계하는 것이다. 또한 "주변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르침은 사회 지도층이 가문의 안락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에 베풀며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강조한 것이다. 가진 자가 권력을 이용하여 더 많은 부를 쌓고자 하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고, 사회적인 책무를 강조한 이러한 가르침은 그대로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최씨 집안의 마지막 만석꾼인 최준은 안락한 삶 대신 일제의 강점에 맞서 1910년대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 등의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또한 그는 안희제의 백산상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재정을 지원했고, 해방이 되자 교육 사업을 위해 대학 설립에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다.
프랑스어로 지도층의 책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은 그 ‘명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고귀한 신분일수록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14세기 영국과 프랑스 백년전쟁 시 프랑스의 마지막 보루이던 ‘칼레시’가 함락된다. 영국왕은 이에 책임을 물어 모든 시민을 죽이겠다고 하면서 만일 시민 중 6명이 죽음을 자청한다면 ‘칼레 시민’은 무사할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그때 칼레시의 최고 부호이던 생피에르는 사지에 처한 시민을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뒤따라 시장과 그의 아들, 법률가, 부호 등 7명이 자원하여 영국왕의 명령보다 1명이 더 많아졌다.
생피에르는 처형 당일 형장에 도착 선순위로 6명을 결정하겠다고 제안했다. 다음 날 아침 6명이 형장에 도착했을 때 정작 생피에르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자진하여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이유인즉 초과된 1명을 가리다 보면 그들의 용기와 시민정신에 흠결을 염려한 것이었다. 이때 만삭이던 영국 왕비는 ‘칼레 시민’의 애국정신에 감동하였고, 이들의 죽음이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며 처형 중지를 요청하게 되어 결국 사형을 면하게 된다.또한 세계 1·2차 대전 시에 영국의 고위층 자녀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는가 하면 6·25전쟁 때에는 미국 장성의 아들들이 142명이나 참전하여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같이 로마 왕정시대나 영불 백년전쟁, 그리고 세계 1·2차 대전에서의 상류 지배세력이나 사회지도층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우선하여 자기 의무·자기 희생을 솔선수범한 전설 같은 실화는 시공을 초월하는 고귀한 가치다.그러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상류층에 있거나 사회적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로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가르치는 대명사가 되었다.우리나라 국란 극복사에도 수많은 구국의 영웅이 계셨으며 근세 3·1 독립만세 운동은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민족 정기의 발로요 구국운동이었다. 이 같은 만세운동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때맞춘 거사요, 거기에는 구국 일념으로 죽음을 무릅쓴 33인의 민족 지도자가 있었고 2000만 백성의 원의 불길 같은 호응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지난 2014년 7월 개봉한 17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은 영화 ‘명량’에서, 그리고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을, 선조는 질투하고 시기하여 끝내는 대역죄인으로 몰아간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선조는 어떤 왕이었을까.선조는 불투명한 왕위계승 과정으로 정통성의 시비가 있었는데, 이러한 시비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조는 재임시절 대부분을 당쟁으로 허우적대다 정치가로서 실패한 왕이었다. 즉 선조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아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림의 당쟁으로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게 됐고, 종국에는 정여립 사건을 계기로 무수한 비극이 발생했다.
무능한 정권인 선조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현실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다. 그렇게 머릿속의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동안 나라는 깊숙이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1개월 만에 한양도성은 무혈점령 당한다. 이러한 때에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 획득의 요체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의 개혁이다. 선조는 신분제도와 조세제도의 모순 때문에 백성들의 버림을 받았다. 이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조선은 멸망할 것이었다.
이때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제정한 각종 개혁입법으로 백성들의 마음은 돌아오면서 조선은 망국의 위기에서 회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선조의 마음은 달라졌다. 전시의 개혁입법들이 무력화됐던 것이다.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자세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선조는 전란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고, 성리학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없었으며, 새 나라를 개창할 주도세력도 없었다.
선조의 백성들에 대한 신뢰(민심)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조는 왕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커녕 한양도성과 평양과 의주를 버리고, 심지어 요동으로 도망가려고 하면서 구국의 충신인 이순신 장군을 대역죄인으로 몰았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건데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펴보자.사회 지도층의 일탈이라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 역사에 면면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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