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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1] 김영란법 시행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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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1] 김영란법 시행 1주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10.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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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법이 지향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법의 불명확성은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 “오해 살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소극성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히 뒤따라야 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큰 줄기는 ‘3, 5, 10’ 원칙이다.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는 10만원의 한도를 말한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는 금품수수가 금지되지만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의례에 한해 ‘3, 5, 10’이 허용된다. 사회 상규에 따른 금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법조문이 그리 간단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가 직무와 관련되며 어디까지가 의례나 사회상규인가 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경찰에 신고 된 첫 사례는 서울시내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같은 수업을 받는 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해석에 따라 캔 커피 한 병은 직무와 관련된 뇌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 상규가 될 수도 있다.
 
같은 날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첫 신고도 “취업한 졸업예정자가 강의를 안 듣는 것을 담당교수가 묵인해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편의를 봐주던 대학들에 느닷없는 불똥이 떨어졌고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졸업예정자들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광주시청의 한 공무원은 “장인 장례식에 직무와 관련이 있는 회사의 사람이 20만원을 조의금으로 보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청탁방지담당관실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20만원을 보내왔는데 20만원 전액을 돌려보내야 하느냐, 아니면 10만원을 받고 나머지 10만원만 반환하느냐. 또는 윤리강령에 따라 5만원만 받고 15만원을 반납하느냐’하는 질문이다.
 
이처럼 법적용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데다 처음 시행된 탓에 판례도 없어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권익위원회에는 질의가 쇄도하고 있으나 권익위도 납득할 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당 기관의 초청을 받아 김영란법을 강의하는 법학자나 변호사들도 “애매하면 하지 말고, 당분간 오해 살만한 일은 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다. 기껏해야 “더치페이가 최선이다”라는 답을 내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법적용 대상자들은 ‘시범케이스로 걸려 신세 망치는 일’은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 모두가 과도한 자기검열에 빠져 몸을 낮추고 있다. 다이나믹한 활동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피동성과 소극성이 들어서고 있다.
 
대신 신고포상금을 노리는 란파라치(김영란법 + 파파라치)로 인해 상호 불신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는 투명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다. 갈등과 불신만 더욱 가중시켜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게 될 뿐이다.
 
우리나라에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기관은 4만919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교육기관(2만2,412개)과 언론사(7,210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언론사의 경우 사회 전반에 관련이 되다 보니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법 적용 대상자라해도 무리가 아니다.
 
김영란법이 우리사회를 훨씬 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사회의 투명성은 권한과 권력의 남용을 막는데도 크게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국가의 품격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법은 해석여하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법을 전공하고 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면 곤란하다. 법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가 되거나 엿장수 가위처럼 엿을 자르거나 해서는 법 취지의 목적과는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투명사회를 통한 권한과 권력의 남용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권한과 권력의 남용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김영란법이 지향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법의 불명확성은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 “오해 살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애매하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소극성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히 뒤따라야 한다.
 
동시에 법 적용 대상자와 국민들도 법 제정의 취지를 받아들여 김영란법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무처럼 적극 동참해야 한다. 부패한 사회를 아들. 딸에게는 물려줄 수 없다는데 공감한다면 말이다.

어쩌면 ‘사과상자’나 ‘굴비상자’에는 사과와 굴비만이 담기고 흙수저도 경쟁의 결과에 따라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사회를 김영란법이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져 본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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