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소비절벽' 내수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상태바
'소비절벽' 내수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12.01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능한 권력의 민낯이 처음 드러났을 때 국민들은 그저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거대한 실체를 덮었던 베일이 벗겨질수록 국민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하기 시작했다. ‘잘못은 최고 권력자와 측근들이 했는데 부끄러움은 왜 우리 몫인가’ 하는 한탄이 쏟아졌다. 부끄러움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주말마다 광장의 촛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싸늘한 눈비를 맞으면서도 함께 함성을 지른 사람들은 벅찬 연대감을 느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고 분노한다고 해서 모두가 광장에서 함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연대의 촛불 광장에 마음만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나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해서, 가게를 열어야 해서 혹은 직접 참여까지는 내키지 않아서 등 사정은 제각각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벅차오름을 느낄 때 함께하지 않거나 못한 이들의 마음에는 미안함이 대신 자리 잡는다. 묘한 죄책감 탓에 주말 외출이나 쇼핑·외식이 꺼려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주 말 저녁, 한 지인은 치킨 배달 주문을 포기했다고 한다. 초겨울 추위 속에 모인 사람들이 TV 화면에 가득한데 차마 그 앞에서 따끈한 치킨을 뜯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집 근처의 한 상점은 엄중한 시국에 혼자 분위기를 내는 것 같아 올 크리스마스에는 트리 장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굵직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연말이면 늘 내놓던 소소한 고객 대상 이벤트조차 ‘눈치 없다’는 비난을 들을 것 같아 포기했다는 곳이 많다. 유죄인 자들은 여전히 뻔뻔한데 무죄인 국민들은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뒤범벅된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모순된 일상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죄 없는 국민들의 착한 ‘자숙(自肅)’이 지속되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은 내수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CCSI)는 95.8로 전월(101.9) 대비 6.1포인트나 급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했던 지난 2009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내수 소비의 바로미터 중 하나인 백화점 매출은 이달 들어 매주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연말 특수에 기대어 한철 장사를 해야 하는 영세업체들의 사정은 지금 더 어렵다. 개인 사업자든 기업이든 연간 실적 달성을 위해 해가 넘어가기 전 마지막 영업에 힘을 쏟아야 하지만 차마 앓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년 계획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붕괴된 국정 시스템이 국민들의 마음을 멍들게 한 데 이어 경제까지 망가뜨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정 재건의 방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29일 대통령이 정권의 운명을 국회에 떠넘기면서 정치권의 정치공학 타령은 앞으로 더 늘어지게 생겼다. 죄 없는 국민들이 자숙으로도 모자라 지체된 시간에 대한 대가까지 또 치러야 하나.
문제는 시중에 풀린 돈이 돌지 않고 있다.서민들의 장사는 신통치 않고 손님들이 행여나 자신의 집을 찾지 않을까 긴 목만 빼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때문에 위축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소시민들의 영업까지 소비가 줄어드는 영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부진과 불확실성 증대 등 최근 우리나라 현실의 여러 요인이 가계나 기업의 소비와 투자를 묶어놨다.당연 풀린 돈마저 돌지 않았고, 가면 갈수록 소비가 위축됐다. 여기에 최순실 사건 등 국정농단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이 투자 등 돈 흐름을 끊어 놓는 데 일조했다.한국은행은 돈의 흐름을 파악한 자료를 발표하면서 소비가 줄어든 요인을 알 수 있게 했다.
최근 국내경기의 극심한 부진 속에서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잔뜩 위축된 데다 국내외 불안요인으로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밝힌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 9월 19.6회로, 20회 밑으로 떨어진 것이 11년 7개월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을 인출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는 경기 부진과 불확실성 증대, 노후자금 부담 등의 요인 때문에 가계나 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나서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과 기업이 자금을 풀지 않으면 생산, 투자, 소비가 늘지 않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국내 정치 혼란 여파로 정부의 정책보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경기 부진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수출업체 10곳 중 4곳은 내년 수출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중앙회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중소기업 대다수가 현 경제가 ‘위기’라고 밝혔다. 위기 원인으로는 소비심리 위축, 매출 급감 등 내수침체, 정부의 정책신뢰 상실 등이었다.
따라서 실제 식당가를 찾으면 예전처럼 혼잡하지가 않고, 주인들의 눈망울도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보인다. 또 업종을 전환하거나 주인이 한두 달 사이로 바뀌는 경도 허다했다. 소비가 되지 않아 돈이 돌지 않는데 빚내 장사하는 사람들은 버티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지난 1997년 상황으로 돌아간 듯 모든 것이 원활하지가 않다.
경제 현장은 더 난리다. 유통가는 거의 울다시피하고 있다. 전국을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백화점 주말 매출은 급격히 위축됐다. “올해 매출은 작년의 절반도 안된다”는 게 백화점 업계의 하소연이다. 소비 심리는 위축됐고, 연말특수는 실종됐다.부동산시장도 싸늘하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부동산 온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가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 데에는 구조적인 저성장에 최순실 사태와 미국 차기 행정부 등장에 따른 국내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가 주원인이다. 불경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자들이 가뜩이나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순실 사태가 촉발한 국정마비가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기에다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에 토대를 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추진할 것으로 보여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경제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을 전망이다. 
경제 상황이 이처럼 위중한 데 국내 정치권은 ‘촛불 시위’에만 매몰된 모습이다. 정치권은 최순실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보여주는 촛불 시위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경제호(號)가 순항할 수 있는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 촛불 시위대 뒤에 서있지만 말고 후임 경제부총리 임명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국정의 한 축인 거야(巨野)는 현재 총체적인 국가 위기를 정략적으로 악용해서는 곤란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국가위기에 대한 야당의 태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87·97 체제'를 극복하고, 새 국가 지배 구조, 새 경제 모델을 장착해야 한다. 정치권, 관 료, 학계, 언론이 활로를 찾기 위해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할 때인데, 사분오열로 골든 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회,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경제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자고 한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탄핵과 개헌이 청년 일자리, 국민 노후를 보장하진 못한다. 새 경제 모델을 찾는 일이 탄핵, 개헌보다 더 중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