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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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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7.01.0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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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줄긋기를 좋아한다. 처음만난 사람들끼리도 금세 한두 개 쯤의 줄은 쉽게 그을 수 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혈연관계는 물론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선으로, 사투리로, 우리는 줄을 긋는데 너무도 익숙하다. 줄긋기는 동질성을 찾게 해주는 흥미로운 게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줄긋기는 구별 짓기나 편 가르기에 유용하다. 살고 있는 지역,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 가장의 직업과 직위, 다니는 학교와 학원, 타고 다니는 차, 가지고 있는 가구와 입고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 명품 백 등은 동질성을 찾게 해주는 동시에 구별 짓기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줄긋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명품에 목숨을 건다. 언감생심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또 남보다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원한다. 구별 짓기는 편 가르기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나라의 경계선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에 길들어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가 달라지면 여자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의 지위를 말해 줍니다.’ 이런 아파트 광고 카피는 주거 공간이 ‘나’를 상징해 주는 장소임을 내포하고 있다.

 

더 이상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상징물이 된지 모래다. 동시에 그 가정에 소속된 집단의 자부심을 과시하는 경쟁력이기도 하다.

 

소설가 이외수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라고 했다. 이 콘크리트 캐비닛에도 민들레꽃은 필 수 있을까. 민들레는 줄긋기를 하지 못한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 부는 데로 날아가고 떨어지면 그곳이 어디라도 뿌리를 내린다.

 

척박한 땅에도 딱딱한 시멘트 틈 사이에도 피어난다. 꽃대가 꺾이고 밟혀도 고개를 든다. 민들레꽃은 시멘트로 포장된 딱딱한 땅에서 흙이라고 할 수 없는 한줌의 먼지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거리상으로는 가구별 한계가 그렇게 가까울 수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거리는 상당히 멀다.

 

모든 서비스 시설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유하는 아파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폐쇄되어 있어 앞집이나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웃에서 노인이 죽어 몇 개월이 흘러도 발견되지 않는 곳이 아파트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사를 오면 떡이나 맛있는 음식을 해서 이웃에 돌리고 했는데, 그런 풍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동질성과 편의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동시에 개체성이 무시된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고급 아파트에 살든 평범한 아파트에 살든 한국인의 욕구와 갈망은 늘 최고급 아파트의 주거공간을 헤매며 방황하고 있고, 보다 더 넓은 평수, 더 좋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다.

 

특별히 아파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반영시켜 준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파트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기호가 되었다. 환경심리학자들은 주거환경이나 장소가 인격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인간은 주거를 통하여 자아를 드러낸다.

 

최근 아파트 광고를 보면 주거공간에 대한 본래의 의미는 없다. 아파트 광고에 아파트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브랜드 파워와 최고급 아파트, 명품을 찾아 헤매는 우리네 마음에 민들레 홀씨가 떨어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에도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란다. 세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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