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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人은 ‘노하우’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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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人은 ‘노하우’의 보고다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7.03.21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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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가 심화돼 가면서 노인이 천대받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귀찮은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이참에 우리는 그들의 은혜에 애써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워 놓은 존경의 표현은 차제로 치더라도, 노인은 경험과 노하우의 보고다. 세상이 혼탁하고 두서가 없다. 노인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누구나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너도, 나도 노인이 될 수밖에 없기에 착실히 후대들을 위한 마음의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목표도, 살아 숨 쉬는 지혜도 없이 오직 앞으로 질주하는 이 세태에서 한 번쯤 지혜를 줄 수 있는 노인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 가고, 노인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통념에 굴복한다면 노인은 단지 짐일 뿐이다.

 

생각하는 사람, 철학자, 논쟁자, 질문을 던지는 사람, 정신적인 안내자로 역할을 맡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노년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이해력이야말로 이 사회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키워가는 것이야말로 노인세대의 가장 큰 역할이다.

 

노인세대가 이 시대에 원하는 것은 몇 시간의 지하철봉사와 도로변의 잡풀을 제거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노인 말고도 많다.

 

노년은 노동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깨달음과 지혜, 정신적 봉사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만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줄 수 있다. 지혜는 경험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노인만큼 풍부한 지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스마트 폰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지는 못해도, 컴퓨터 게임 조차 모르는 그들이지만 삶의 지혜는 가득 넘친다.

 

지금의 청년들은 그들은 지혜를 쌓을 만큼 오래 살지도 않았고, 많은 일을 해보지도 않았다. 사람이 많은 세월을 살아, 이제 종착점에 들 즈음, 비로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 지혜는 어느 때보다 잘 알고 많이 경험했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몸은 늙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모든 것은 젊은이들 에게 내주고 그 많은 지혜를 펼치지도 못하고 뒷자리로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지혜나 충고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노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노인들은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진리를 그들이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어야 한다.

긴 세월을 살았던 사람만이 이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필요치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졌다.

 

노인들은 이 사회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은 과거의 실수가 다음 세대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늘의 노인들은 2차 대전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며, 6·25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겼었고, 눈으로 확인한 세대들이다. 광복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그 실상을 보았다.

 

어느 정부가 옳았고, 어느 정부가 진실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산 증인들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오직 노인만이 과거의 좋은 결정과 그른 결정을 했는지 지켜보았다.

 

그들은 다른 대안이 있음을 알려주고 역사에 비추어 오늘날의 선택을 평가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사람들이다.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오늘 날의 정책결정 테이블에 연륜의 지혜를 보태는 것이 노인의 역할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그 자리에 노인을 초대하지 않는다. 과거 정계나 관료계에서 호사를 누렸던 사람들만 모아 정책을 결정하다보니 국민을 위한 올바른 정책이 나올 리 없다.

 

노인들은 할 말이 많으나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지 않다. 그래서 아예 바른 선택의 길을 알면서도 스스로 머릿속에 묻어버리고 만다.

 

오늘의 노인들은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대가를 치르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무력만이 국가안보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돈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은 부패가 한 민족의 성실함을 갉아먹을 때, 매카시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권력에 대한 욕망이 편집증으로 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올드보이들이 정권의 주축이 되어 전면에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해답은 알고 있으나 소통이 막혀 말을 못했다.

 

물론 그들은 많은 경험과 경륜을 쌓고 있었던 인물이긴 하나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고인 물로 어느 정도 썩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노인세대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흐르지 않는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드보이의 등장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이제 일반 노인들은 지위도 없고, 야심도 없고, 돈도 권력도 없다.

 

그러나 역사의 경험과 경륜에 따라 이 사회의 예언자가 되고, 나침반이 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노인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지 않은 한, 그들은 기술과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예언자가 되고 현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노인들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라. 그들은 결코 맡은 일을 소홀이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실수와 오판을 경험했기에 더더욱 맡은 일에 충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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