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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편리한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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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편리한 이중 잣대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07.06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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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잣대를 사용한다.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옳고 그름) 등의 판단이 그렇게 내려진다. 자는 어떤 대상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이므로 당연히 그 대상의 크기나 모양이나 외부환경 등과 무관하게 눈금의 간격이 늘 일정해야 한다. 눈금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이는 내면의 잣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잣대를 한결같은 유지하고 적용하기란 실제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경향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우리 아이가 한 잘못은 용서가 되고 남의 아이가 한 잘못은 눈에 쏙 박히거나, 내가 교통신호를 위반한 것은 늘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는 그저 그가 몰지각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내가 침묵하면 깊이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화내는 것은 주관이 분명해서지만 남이 화내는 건 성격이 더러워서라는 식으로 우리는 내면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그래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을 얼마나 공평무사한 잣대로 판단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옛말에 是故君子自難而易彼(시고군자자난이역피) 衆人自易而難彼(중인자역이난피)이라 하여, 군자는 스스로 어려운 일을 떠맡고 남에게는 쉬운 일을 하게 하지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했다(묵자, 친사편). 이렇듯 동양의 전통은 공평무사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경지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아 왔다.

그런 경지는 군자의 자질이 없는 내게 그저 꿈같은 얘기인지라, 나는 다만 나에게 관대한 만큼 남에게도 관대하게 살자는 정도의 지침을 갖고 산다. 그래서 이해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하는 이중 잣대는 생존 본능의 일환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여야(與野)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태를 이끌고 여론을 조성하려고 다투는 행위는 비록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왕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봉서, 사목, 마패, 유척을 하사했다. 이 가운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尺)다. 암행어사는 각 고을의 도량형(度量衡)과 형구(刑具) 규격을 검사하기 위해 유척 2개를 지녔다. 탐관이 백성에게 엉터리 도량형을 써서 세금을 많이 거둬 나라에는 정해진 양만 바치고 나머지를 챙기는 부정부패를 단속했다. 이처럼 길이, 부피, 무게 기준을 의미하는 도량형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대인관계에도 이중 잣대는 갈등을 야기한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결론으로 귀결한다. 심리학에선 인지 부조화라고 설명한다. 자기 합리화가 지나쳐 이중 잣대로 판단하고 기억마저 스스로 조작하는 행태다.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소유효과’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선택, 생각, 소유물에 일반 기준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자기 중심적 심리상태다.

15대 총선 직후인 1996년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의원 빼가기를 비난하는 야당을 향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응수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대의 이중 잣대를 비판하는 단골 키워드가 됐다. 요즘 정치권이 온통 이 ‘내로남불’ 공방에 휩싸였다. 어제의 야당이 오늘의 여당이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당시 비판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익명의 개인주의 집합체다. 독선과 오만이 팽배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했다. 주관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한다. 세계적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남을 판단할 때는 ‘행동’을, 자신은 ‘의도’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신은 의도가 훌륭했다면 쉽게 용서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고 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여야(與野)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태를 이끌고 여론을 조성하려고 다투는 행위는 비록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일이다.남의 흉 보다는 자신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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