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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실체와 법 이론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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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실체와 법 이론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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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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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씨(51)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검찰의 재수사 끝에 법의 심판대에 올랐지만, 공소시효와 증거능력 등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K씨는 조만간 본국으로 강제 추방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8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K씨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K씨의 범행 정황을 증언한 스리랑카인 증인·참고인들의 진술이 "객관적 상황이나 진술 경위에 비춰볼 때 내용의 진실성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K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대학교 1학년생 정모씨를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범행 15년이 지난 2013년 기소됐다. 정씨는 당시 고속도로에서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 30여m 떨어진 곳에서 속옷이 발견돼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고 수사를 종결했다. 영원히 묻힐 뻔했던 사건의 실체는 2011년 K씨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돼 유전자(DNA) 채취검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2013년 그의 DNA가 15년 전 숨진 정씨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은 재수사 끝에 그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강간죄 공소시효 5년이 2003년에, 특수강간죄 공소시효 10년이 2008년에 각각 지난 데 따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1심은 K씨가 정씨 가방 속 현금, 학생증, 책 등을 훔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당시 국내에 머물던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한 끝에 K씨의 공범으로부터 범행을 전해 들었다는 증인을 발견해 항소심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2심은 K씨의 성폭행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증인 등의 진술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2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K씨는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와 2008∼2009년 무면허 운전을 한 별도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집행유예가 확정된 외국인은 국내에서 강제 추방된다.


이번 판결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대원칙과 기존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 같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나,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한 경찰에 끈질기게 이의를 제기해 성폭행 수사를 끌어낸 유족 입장에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일 듯하다. 하지만 성폭행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되나 공소시효가 지났고, 강도 혐의에 관한 증인과 참고인 진술도 타인에게 들은 전문진술에 의존한 것이어서 진실성을 믿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검찰은 K 씨를 스리랑카 현지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내와 달리 스리랑카에선 강간죄 공소시효가 20년이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가입하지 않아 K 씨를 처벌하려면 별도로 사법공조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스리랑카 당국이 우리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뒤늦게나마 사법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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