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79] 우리 꽃구경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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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9] 우리 꽃구경가요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3.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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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누가 꽃의 이름으로 꽃을 짓밟는지 밝히는 것도 사람이 꽃이 되는 세상을 위해 가는 여정이 아니겠어요. 선거 당일까지만 꽃이 아니라 권력도 꽃이 되도록 그 정도의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겠어요. 산에 피는 꽃이야 제 향과 제 빛으로 피지만, 사람의 꽃은 사람의 정성으로 핀다고 믿고 싶네요.”

 

이곳엔 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이네요. 때 아닌 봄눈이 내려 다시 겨울로 접어든 듯 눈이 쌓이고 바람은 날이 섰네요. 그래도 이 봄을 어떻게 하겠어요. 제 아무리 추위가 날뛰어도 꽃들의 피어남을 막지야 못하겠죠. 벌써 들녘은 꽃 잔치인걸요.

꽃피는 봄날은 하루하루가 다르지요. 한 열흘 쯤 되었나 봅니다. 길가 양지쪽에 하늘빛의 개불알꽃이 지천이더니 다음날에는 광대나물이 꽃 피어 춤추더군요.

절기야 입춘에 들어선지 오래지만 바람은 여전히 겨울의 뒤 끝에서 매서웠던 날이었네요. 찬바람 속에서 피어난 앙증맞은 작은 꽃을 보며 비로소 봄이 시작되는가 싶었죠.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봄이 아예 드러내놓고 있네요. 구례 산동면에서 산수유 축제가 열리고, 광양 섬진마을에서도 매화축제가 한 창이지요.

봄비 오는 아침 출근길에는 벌써 개나리도 피웠네요. 이 비가 그치면 머잖아 산천은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으로 물들 테지요. 뒤따라 산 벚나무는 산 버짐처럼 피어나고, 철쭉은 온 산에 들불처럼 번질 테고요.

그러니 이제 피는 꽃의 종류를 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꽃 세상인데요. 피어나는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거로 충분한 봄날이 아닐까 싶네요.

님, 이 봄날에 우리 꽃구경 가게요. 한가한 시간이야 있을 리 없지만 사실, 이 꽃보다 중요한 일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우리네 시간이 아니던가요. 꽃이 피었다 지듯이 우리도 피었다 지는 삶일 텐데 아등바등한 삶을 잠시 내려놓는다 하여 그게 뭐 대수가 되겠어요.

혹시 아나요. 꽃구경 가면 우리도 꽃이 될는지 모르잖아요. 나는 노란 개나리꽃이 될 테니 님은 붉은 진달래꽃이 되세요. 우리 둘 다 같은 꽃은 될 필요가 없잖아요. 서로 다른 꽃으로 피어나 어울려서 한 세상 물들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일 듯싶지 않나요. 사람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무얼 더 바라겠어요.

그래서 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사람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네요. 사람 꽃이 피는 선거의 계절이 다가 온 것이죠. 너도 나도 꽃이 되겠다며 아우성이잖아요. 봄날의 산천보다 더 화려한 사람 꽃들이 피어나니 좋은 세상이 오려 나 봐요. 시장도, 군수도 꽃으로 핀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겠어요. 님이나 내가 바라는 세상이잖아요.

님은 선뜻 동의하지 않는군요. “꽃이 아니고 권력의 꽃이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게죠. 요즘 우리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미투’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군요. ‘정의로운 정부’를 외치더니 마누라와 형제, 아들까지 합세하여 뇌물가족이 된 전직 대통령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고 꾸짖고 싶으신가요. 국민들이 죽어갈 때 머리나 매만지던 그 여인을 잊었냐고, 그게 꽃이냐고 묻는 건가요.

하긴 권력이 꽃이 된 적을 나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선거당일까지만 꽃이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권위를 성적 욕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사람들을 어찌 사람 꽃으로 비유할 수 있겠어요. 영광스런 최고의 공직을 뇌물을 받아들이는 욕된 자리로 만들고, 수첩이 없으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권력자였던 여인을 어찌 사람 꽃으로 비유할 수 있겠어요.

그래요. 님의 말이 틀린 게 아니죠. 우리는 항상 그렇게 속아 온 것도 사실이죠.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저렇게 아우성치며 꽃이 되겠다는 사람들 중에서 꽃에 가까운 사람을 찾아봐야 하잖아요. 아니, 꽃에 가까운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면 누가 꽃 가면을 썼는가는 두 눈 부릅뜨고 색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가 꽃의 이름으로 꽃을 짓밟는지 밝히는 것도 사람이 꽃이 되는 세상을 위해 가는 여정이 아니겠어요. 선거당일까지만 꽃이 아니라 권력도 꽃이 되도록 그 정도의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겠어요.

산에 피는 꽃이야 제 향과 제 빛으로 피지만, 사람의 꽃은 사람의 정성으로 핀다고 믿고 싶네요.

또 속을지 몰라요. 어떻게 자신하겠어요. 하지만 님, 그래도 이 봄에 꽃 같은 세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봄날이 춥다하여 꽃이 피기를 포기하던가요. 꽃 가면의 선거판이더라도 누군가는 꽃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님, 이번 주말에 꽃구경 가요. 님도 꽃이 되고 나도 꽃이 되어 우리 한 세상 흐드러지게 피어 보게요.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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