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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농장으로”…미추홀구, 청년과 함께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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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농장으로”…미추홀구, 청년과 함께 고심
  • 인천/ 정원근기자
  • 승인 2019.05.14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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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천 중심가서 구도심 전락…방치된 빈집에 주변 슬럼화
청년 아이디어로 ‘마을공방 빈집은행’ 시작…LH와 협약 39채 확보

<전국매일신문 인천/ 정원근기자 > 미추홀구 빈집의 변신 <上> 1980년대 미추홀구(옛 남구)는 인천의 중심 시가지였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국철(서울지하철1호선)을 끼고 있어 지역 상권이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구는 당시 인천 내 6개 구 가운데 2번째로 인구가 많은 구이기도 했다. 특히 인천대학교 캠퍼스가 있던 제물포역과 인근 주안역 일대는 부평과 함께 인천의 핵심 상권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1988년 당시 남구 일부가 남동구로 분구되고, 1994년에도 구 일부가 연수구로 분리되면서 상황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연수구와 서구 등지에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면서 남·중·동구로 대변되던 중심 시가지가 ‘구도심’으로 밀려났다. 자연스레 인구 유출 현상도 빚어졌다.


 제물포 상권의 한 축을 이루던 인천대와 인천전문대가 하나로 합쳐지고, 캠퍼스를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한 것도 큰 타격이었다. 상권이 쇠퇴하며 활력을 잃은 남구 주택가는 점차 비어가기 시작, 지난해 7월 미추홀구로 명칭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침체한 상태다.


 미추홀에 있는 빈집은 2014년 333곳, 2015년 402곳, 2016년 544곳으로 꾸준히 늘다가 2017년에는 1197곳으로 급증했다. 인천연구원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인천 내 빈집 수는 동구(32%)에 이어, 미추홀구(29%)가 가장 많을 정도였다.


 주인은 있지만, 실거주자가 없어 마냥 방치된 빈집 때문에 주변은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빈집은 주로 6·25전쟁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숭의동이나 재개발 사업이 이뤄지는 주안동 쪽에 집중됐다.


 구는 늘어나는 빈집에 대한 활용책을 청년들과 함께 찾기로 했다. 인하대학교·인하공업전문대·청운대가 몰려 있는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한 차원이었다.

   빈집 문제와 청년들의 거주 문제를 함께 연계해 해결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구는 지역 청년들이 주도하는 일종의 청년 기업 ‘미추홀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을 새로 설립했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용현1·4동주민센터 공간을 ‘마을공방 빈집은행’으로 리모델링해 내줬다. 바로 이곳에서 빈집을 농장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이 출발했다.


 처음 빈집 농장 아이디어를 낸 최환 씨(33)가 빈집은행 대표를 맡았고, 구는 행정 지원에 나섰다. 가장 먼저 구는 LH 인천지역본부가 소유하고 있던 빈집 가운데 39채를 최장 20년간 무상으로 공급받는 내용의 협약을 2017년 10월 체결했다.


 인천/ 정원근기자 wk-ok@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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